길거리표 휘발유 한 통을 넣고 구르릉 구르릉 멋들어지게 시골 도로를 달린다. 도로변 갓길에 먹음직스러운 수박이 일렬로 주욱 멋지게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진열되어 있다. 누가 보아도 크고 먹음직스러운 수박이 5천 원이라고 박스에 붙여 놓은 가격에 현혹되어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노점상은 예리한 눈빛으로 엷은 미소를 띤 채 꿈소에게 다가온다.
노점상들의 기발한 아이디어^^
꿈소의 눈에 제일 크고 맛있어 보이는 첫째 줄 가장자리 수박을 가리키며 “여기 수박이 정말 가격이 싸고 맛있어 보이네요. 5천 원짜리 맞죠?”
노점상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그의 현란한 말솜씨가 시작된다. “예끼, 이보시오. 여기 수박이 얼마나 당도도 높고 맛있는데요. 그리고 이렇게 큰 것을 시중에서 사려면 1만 5천 원 이상을 주어야 하는데 오늘은 특별히 싸게 줄 테니 1만 원만 주고 가져가시오.”
처음부터 1만 원이라고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면 수고스럽게 차를 돌려 이리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꿈소는 수박 장수에게 “그럼 5천 원짜리 한번 가져와 보시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트럭 뒤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처음 본 수박 크기 반만 한 것을 5천 원짜리라며 가져온다.
“이보시오, 저 수박 앞에 5천 원이라고 떡 붙여 놓아서 차를 세웠는데 이런 법이 어디 있소?” 이렇게 이런 말 저런 말 한참을 언쟁하던 중에 차 안에서 기다리던 아이들이 빨리 집에 가서 개울가 물놀이 갈 생각에 차에서 얼굴을 삐쭉 내밀며 큰소리로 외친다. “아빠, 맛있는 수박 샀어?”
그제야 눈치 빠른 노점상은 꿈소의 호주머니 사정을 눈치채고 아빠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 "오늘만 특별히 만 원짜리 수박을 5천 원에다가 드리고 아이들이 귀여우니 덤으로 다른 과일도 좀 먹어보세요"하며 몇 개 넣어 주신다.
그날 이후 그 수박노점상은 우리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20년간 우리 집 문 앞에 과일과 먹을 것을 두고 사라졌다.
문 앞에 두고 간 것을 보고 전화를 하면 오늘은 안 팔려서 시간 지나면 썩으니 두고 간다고 하고, 또 어떤 날은 너무 잘 팔려서 기분이 좋아서 주고 간다 하고…. 하여간 꿈소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몰래 두고 갔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그 수박노점상은 과일 노점상, 도넛 장사, 건강식품 등 수많은 업종의 일을 하셨다. 업종이 바뀔 때마다 매번 꿈소의 집에 새로운 것을 가지고 와서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몇 년 전부터 방충망 시공을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꿈소의 집에 와서 초특급 방충망 재료가 남았다고 방충망 전체를 교체해 주기도 하셨다. 어찌나 실력이 좋은지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모기를 몇 년째 구경하기 힘들다.
길거리 노점 수박으로 인연이 되어 20년을 친하게 지내다 보니, 그는 비록 배우지는 못했어도 아주 지혜롭고 인정이 많은 사람 향기가 물씬 나는 분이었다.
꿈소는 지금까지 세상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에게 ‘형님’이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오랜 세월 한결같이 우리 가족에게 보여 준 인정 많은 배려에 감동하여 그분을 ‘수박 형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수박 형님이라 부르는 것을 들었던 유빈이 휘성이도 멋모르고 덩달아 수박 형님이라 불렀다. 수박 형님은 아이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셨다.
어느 날 꿈소가 “형님, 아빠나 아들이나 모두 똑같이 수박 형님이라 부르면 족보가 이상하니 큰아버지 또는 삼촌으로 바꾸는 것이 어떠세요?”라고 여쭈었다. 하지만 그는 유빈이와 휘성이가 장성해서 자신이 지구별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을 수박 형님으로 불러 주는 것이 더 기쁠 것 같다고 했다. 그날부터 그는 우리 가족의 영원한 수박 형님이 되었다.
수박 형님은 아주 어린 나이에 남의 집 머슴으로 팔려가 오랜 세월 머슴 생활을 하여 부모에 대한 기억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학교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부당한 대우만 받다 보니 세상에 대한 희망도 크게 없었고 하루 세끼 먹으면서 언젠가 그곳을 탈출할 생각만 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이것이 인생이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사연보다 더 구구절절 기구하였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을 겪으면서도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은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머슴살이하던 집을 뛰쳐나와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가져보는 것이 인생 최고의 소원이었다고 한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어깨너머로 한글과 숫자를 배워가며 길거리에서 장사하기 시작했다. 그의 간절한 소원대로 착한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고 그의 아들과 딸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애지중지 키웠다. 그렇게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훌륭하게 잘 자라주어 명절이나 휴일이 되면 손자 손녀까지 온 가족동반 여행을 가고 있다. 이제 그는 꿈소도 부러워하는 명품 가족의 멋쟁이 할아버지가 되었다.
꿈소가 길거리 노점상의 수박을 사려고 찾아간 그날도 자동차가 쿠르릉 쿠르릉 소리 내는 고물 중고차였기에 노점상 본능에서 보았을 때 꿈소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정이 수박 형님이 보시기에 화목해 보였기에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나 눈치 빠르게 우리 가족에게 수박과 과일을 잔뜩 주어 행복을 선물한 것이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천사가 살고 있었다.
옛날에 호랑이가 자신이 한 나무꾼의 친형인 줄 알고 그 나무꾼과 어머니를 죽을 때까지 보살핀 이야기가 있다. 우리 가족에게 있어 수박 형님은 인정 많은 호랑이였고 길거리 키다리 아저씨이자 우리 마음속 성자였다.
산골축사 생활부터 유빈이와 휘성이가 글로벌 자율주행 AI 팀장이 되기까지 모든 것을 곁에서 가족처럼 지켜본 수박 형님에게 유빈이와 휘성이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조금만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부탁을 받은 그날부터 수박 형님은 잠도 설치고 큰 걱정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나 보다. 며칠이 지나고 수박 형님이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언제까지 글을 써야 하는 건지 물어 왔다. 그제야 ‘아차, 실수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꿈소의 특별한 부탁인 줄 알기에 멋지게 글을 써서 주고 싶은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며칠간을 고민만 했던 것이다. 천하에 무서울 것 하나 없던 수박 형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숙제가 ‘글쓰기’였다.
꿈소가 수박 형님에게 “형님, 보내 주신 글이 암호라도 제가 다 해독할 수 있고 녹음을 해도 좋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문자로 보내든지 음성으로 녹음해서 보내든지 편하게 형님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그냥 간단하게 보내 주시면 돼요. 그것도 힘드시면 만나서 저에게 말로 해도 되니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계속 마음 고생 하지 마시고요.” 이렇게 말한 이후에야 그의 걱정이 조금은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