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와 경차를 보는 우리의 시선
소개팅 날이다. 남자 쪽에서 차를 타고 우리집 주변으로 온다고 한다. 그가 탄 차는 bmw이다. 다음날 또 다른 남자와 소개팅을 했다. 그가 끌고 온 것은 경차였다. 서로 비슷한 조건의 남자였지만 타고 온 차에 따라 내 호감도가 변하는 건 속물일까. 정상일까.
한편, 운전에 대한 선호도는 다양하겠지만 , 대부분 운전을 하면 졸리거나 차가 막혀서 싫다는 ‘운전싫어파’와 대중교통은 사람이 많고 번잡하고 싫어서 자차 타고 가는 게 좋은 ‘운전좋아파’ 두 가지로 나뉜다. 좀 더 자세히 찬반 토론을 해보자면 ‘운전싫어파’의 입장에서는 서울엔 특히 주차할 자리도 없고, 기름값이나 주차비도 다 돈이다. ‘자차선호파’에게 있어서 대중교통을 갈아타고 환승을 하고, 가까운 거리를 돌아가는 것 또한 시간이라는 기회 비용이 드는 행위다. 두 입장 간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차에 따른 사회적인 시선은 1초 만에, 대화 한 번 없이도 그 사람의 경제적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도구이다. 카푸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본인의 능력이나 재력에 비해 과분한 차량을 타고 다니는 카푸어는 허영심과 과시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반적 기준에서 자산 1순위가 집(부동산), 2순위가 자동차인데, 주택은 입지와 크기, 가격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과시할 수 있으나 부동산의 특성상 남에게 주택 자체를 과시하기는 어려우며, 자동차와는 차원이 다른 가격을 형성하고 있기에 사회적인 지위와 재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자동차만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적 시선에서 한 발 더 물러나기로 했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오래된 차를 처분하고 뚜벅이가 되기로 했다. 서울만큼 차가 막히고 주차가 어려운 반면, 대중교통이 훌륭하게 잘 되어 있는 인프라를 갖춘 도시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각자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2시간 이상의 대중교통을 통해 데이트를 즐긴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하면, 카푸어가 아닌 뚜벅이가 되기로 했다.
물론 언젠가 우리도 아이가 생기면 아주 작고 귀여운 경차를 구매하기로 했다. 캐스퍼와 모닝 같은 경차. 누군가는 우리를 한심하거나 불쌍하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타인의 시선에 우리가 잘 살아 보이듯, 못 살아 보이는 것은 우리게게 중요치 않다.
우리는 차를 소유하면서 가져야할 부담과 책임감을 버리고, 소유하지 않으면서 가져야 할 불편함을 감내하기로 했다. 물론 차를 사지 않는 것과 저렴한 경차를 산다는 것이 무조건 옳고, 합리적이며 좋은 선택이라는 의견은 전혀 아니다. 그저 독특하게나마 사회적 시선에서 역행하는, 뜻이 맞는 짝꿍을 만난 것은 우리의 아주 작고 커다란 행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