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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07. 2024

엄마, 웨딩드레스 말고 전통혼례할래요

결혼식은 꼭 올려야하는가

사실 서양식 결혼식인지 한국의 전통혼례를 할 것인지는 크게 문제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결혼식’ 자체가 싫었다. 남들 다 순리대로 가는 길을 왜 나는 그러지 못하는 걸까. 내 유전자에 청개구리 기질이라도 있는지 모른다. 모든 게 싫다. 그냥 결혼식 자체가 하기 싫다. 스스로도 이런 내가 괴로웠다. 하지만 어째. 내가 이런 사람인걸.


어렸을 때부터 두발규제와 0교시,전혀 ‘자율’적이지 않았던 강제 ‘야간 자율학습’을 하며 느꼈던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규제에 대한 분노가 이렇게 나를 불만이 가득한 성인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스몰웨딩조차 아닌 노웨딩을 하기 위해서는 나는 최소한 우리 부모님이라도 설득시켜야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No'. 엄마는 예의라는 게 있고 절차라는 게 있는데 딸아이가 남들 다 하는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는 건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엄마의 입에선 여러번 ‘예의와 절차’가 강조되었지만 내가 보기엔 엄마는 그동안 뿌린 축의금을 회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보였다.


내가 결혼식을 하기 싫은 이유는 명료했다. 첫 번째로 내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나를 축하해준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두 번째로는 결혼식을 위한 다양한 절차들이 귀찮고 번거로웠다. (물론 수 천만원의 비용까지 포함해서.) 세 번째로는 무대공포증이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겁이 났다.


최소한 내가 결혼식을 하기 싫은 이유 중 두 번째인 고비용 저효율 문제는 전통혼례를 선택하는 편이 훨씬 나아보였다. 이로써 노웨딩을 하지 못하면 웨딩드레스라도 입지 않겠다는 청개구리 기질이 또다시 발휘되었다. 나는 한복을 입고 전통 혼례를 진행하기로 했다.


갑자기 흥선대원군의 영혼이 내 몸 안으로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서양식의 하얀 웨딩드레스가 우리나라 결혼식 문화를 지배한 걸까. 노웨딩을 할 수 없다면 족두리를 쓰고 연지 곤지를 바른 채 사회에 저항하겠다.


용을 쓰고 결혼식을 막아보자 하는 게 꼭 18살짜리 어린애 같기는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통혼례는 화려한 꽃장식 비용이 따로 필요없기 때문에 비용이 1/4 이하로 줄어들었고, 웨딩드레스가 아닌 한복을 선택하면서 다이어트나 화장, 머리 세팅 등 스드메에 들어가는 비용을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외모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으며, 사회자가 아닌 전문 집례자가 이끌어 가는 식순이기에 성혼선언서와 내가 걱정했던 행위도 할 필요가 없었다.


집례자에게 식순을 물어보니 구체적으로 알 필요 없다고 답했다. 나는 집례자의 발언에 당황했으나, 그는 전통혼례는 전통적으로 혼례 당일 신랑 신부가 처음 만나서 혼인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랑신부의 능숙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고 미숙한 모습이 고유의 멋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사실 난 이부분이 ‘전통혼례의 멋’이라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로 인해 서양식 웨딩드레스가 아닌 한복을 입는 전통혼례를 결정했다.


주변에서는 날씬한데 딱 달라 붙는 웨딩드레스 입지 않고 펑퍼짐한, 게다가 남들이 돌려 입어 닳아빠진 원사이즈 한복을 입어서 안타깝다는 말도 했고, 웨딩드레스를 입지 못한 걸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난 자신있었다. 최소한 31살 ‘조이‘라는 인간을 겪으면서 내가 전통혼례를 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자신 말이다. 다만 아직도 노웨딩을 추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남아있겠지.


한국에서 결혼은 개인과 개인간의 결합이 아니라 가족과 가족간의 결합이기에 결혼식과 결혼이라는 문제가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결혼생활이 빚는 갈등 중 일부는 이런 사고에서 파생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결혼이 개인과 개인의 결합임이 조금만 더 존중된다면 둘이 처음 만난 카페나 장소에서 간단하게 지인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정말로 나의 결혼을 축하해줄 몇 사람만 초대해 웃고 즐기며, 간소하게 해내도 좋다.


나는 이루어 내지 못했지만, 나의 미래의 아이에겐 꼭 이러한 결혼식 문화를 물려주리라 다짐해본다. 이 엄마는 노웨딩, 동거, 딩크, 비혼 모두 다 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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