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20대 후반 성별: 여성 직업: 대학원생
고민: 섹파를 끊어내고 싶어요.
한 시간 후에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다. 이 얼마 만의 조우인가.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떨림을 넘어 숨이 살짝 조여오기까지 했다. 어떠한 것에도 방해받지 않도록 최대한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껴둔 와인을 테이블 위에 놓고 와인잔을 세팅하는데 문득 손톱이 길어 보인다. 깔끔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손톱 정리를 했다. 그때 또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뭐지? 조금 늦는다는 건가?’
"섹파를 끊고 싶은데 끊어낼 수 없어 답답합니다."
상담 요청이다. 한 시간가량의 여유가 있지만 상담이 길어질 위험이 있다. 평소라면 방해받기 싫어 상담을 뒤로 미룰 테지만 미리보기 메시지만으로도 이렇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사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민도 잠시, 어느새 메시지를 꾹 눌러 내담자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사연은 이렇다. 실험실과 도서관만을 왔다 갔다 한 지 어느새 5년이 된 내담자. 이제는 공부도 연구도, 아니 삶 자체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뭐 재밌는 일 없을까, 고민하던 내담자는 요즘 유행한다는 데이팅 앱을 설치했다. 여러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다 그중 가장 재밌을 것 같은 남자와 술집에서 만났다. 그는 지루한 실험실 선배들과 달리 모든 게 자극적이었다. 정신없이 웃다가 눈을 떠보니 모텔 침대 위였다. 그렇게 시작한 관계가 연인으로 발전되기라도 했으면 다행이련만, 이 남자와는 술집과 모텔만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그야말로 섹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인생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알면서도 끊어낼 수 없다. 어차피 만나봐야 술 마시고 섹스밖에 안 할 걸 너무 잘 알지만, 자꾸만 나가게 돼 고민이 깊어졌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생년월일을 보니 내 사주와 비슷하게 먹고 말하고 표현하는 유전자가 강했다. 결국,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고 이를 해소하려는 열망이 강하다는 뜻이다. 이런 유전자가 강한 사람은 욕구가 억제되면 안 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병에 걸려서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분출되기 때문이다.
"연구한 걸 발표하거나 설명하는 거 좋아하지 않으시나요?"
"네, 맞아요."
"먹는 것도 좋아하시죠?"
"네, 완전 좋아해요."
"지금 다이어트 중이시죠?"
"소름! 어떻게 아셨어요? 사주에 그런 것도 나오나요?"
"그런 건 아닌데 저도 선생님과 똑같은 사주 유전자를 가져서 어떤 심정인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식욕이 강한 사람이 성욕도 강하다는 말이 사주의 세계관에서는 참이다. 두 가지 모두 나의 원초적 욕구다. 성욕이 특별히 강해서, 사무치게 외로워서, 섹파가 부르면 나가는 게 아니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인 맛집 가기를 스스로 차단했기에 다른 쪽으로 분출할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이런 내용을 설명하며 다이어트를 잠시만 보류해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다이어트를 안 한다고 살찔 사주도 아니었다. 내담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정말요? 그럼 차라리 편하게 먹는 게 낫겠네요”라고 말했다. 허탈해하는 듯하면서도 가벼운 웃음이 묻어났다.
타고난 팔자의 욕구를 억누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을 지나치게 억제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조율하는 게 훨씬 나은 길이다. 상담을 하는 사이 하나둘 쌓인 메시지를 확인했다. 곧 도착한다는 알림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서둘러 화장실에 가 입을 헹구고 손을 씻었다. 띵동, 때마침 울리는 벨 소리에 가슴이 요동쳤다. 현관문을 열자 은은한 향이 퍼져왔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따뜻한 온기를 품 안에 가득 안았다. 코끝에 와닿는 따뜻한 달큰하고도 구수한 냄새에 침이 절로 고였다. 음, 바로 이거야. 야무지게 먹어야지. 기다리던 굽네 치킨.
사주 처방
욕망을 억제하지 말고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해소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