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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이별

두 사람의 간극

by fiore 피오레 Mar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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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결혼식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릿한 채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그러나 황홀하도록 아름답게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민준과 갤러리에서의 데이트 이후, 현수를 통해 민준이 바로 그 의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은 한층 더 깊어졌고, 어머니는 오히려 수연보다도 먼저 민준을 마음에 들어 했다.


결혼식은 소박하지만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우아하게 진행되었다. 가족들만 초대한 조용한 예식이었다. 성당의 은은한 스테인드글라스 아래, 수연과 민준은 혼배미사를 올렸다.



요셉 신부님은 미사를 집전하며 민준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축복과 신뢰가 가득 서려 있었다.


"하느님께서 두 사람을 한 몸으로 맺어주셨으니, 그 사랑을 굳건히 지켜 나가기를 바랍니다."


신부님의 목소리가 성당 안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고, 수연은 차분한 숨을 들이마셨다.


그들의 신혼여행지는 파리였다.


민준의 유학 시절 친구들은 그들의 첫날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호텔에 도착해 미리 예약된 스위트룸으로 들어갔다. 새하얀 린넨 침대보 위에는 붉은 장미 꽃잎이 비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창가와 테이블 곳곳에도 하나하나 정성스레 배치된 장미들이 은은한 장미향의 운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방 안은 금세 깊고도 부드러운 로즈 아로마로 가득 찼다. 그리고, 친구들은 민준과 수현을 위해 각국의 명주(名酒)를 공들여 준비했다.


그들의 사랑을 축복하기 위한 와인 컬렉션이 한곳에 가지런히 놓였다.

황금빛 거품이 찰랑이는 가장 우아한 축배의 상징인

프랑스의 샴페인, ‘와인의 왕’이라 불리는 묵직한 기품인이탈리아의 바롤로, 태양 아래 숙성된 깊은 풍미인 스페인의 리오하,이국적 대지의 강렬한 여운인 칠레의 카베르네 소비뇽,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포도밭에서 탄생한 온갖 종류의 와인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었다. 그리고, 크리스털 와인잔과 정교한 디캔터까지 함께 준비되었다.

빛나는 잔 속에 사랑을 채우고, 영원히 기억될 밤을 위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마침내, 민준과 수현이 도착하자 친구들은 반갑게 맞이하며 열렬한 환영을 보냈다. 방 안은 경쾌한 웃음소리와 정겨운 대화로 가득 찼고, 와인병들이 하나둘씩 개봉되었다. 친구들은 유학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지난날의 순간들에 취해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와인의 깊은 향과 분위기에 젖어든 그들은 현실을 잊은 듯 밤을 즐겼다. 결국, 기나긴 이야기와 와인에 취한 모두가 호텔방 곳곳에서 스르르 잠들고 말았다.


그러나, 수현은 혼란스러웠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수현은 민준의 바쁜 일상 속에서 점점 더 지쳐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병원과 학회, 끊임없는 업무의 연속.민준은 늘 바빴고, 수현은 점점 더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져야 했다.창밖을 바라보며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오늘도 늦을 것 같아."


짧은 메시지가 화면 위에서 빛났다. 수현은 점점 자신이 외로움에 갇혀 가고 있음을 실감했다.결혼 후, 그녀는 항공사에 휴직계를 제출했다.


단 한 번뿐인 이 시간 속에서, 한동안 아내로서의 삶을 만끽하고 싶었다.아이도 갖고, 여유로운 주부의 일상을 경험하며 살아보고 싶었다.그러나, 민준의 시간은 그녀의 시간과 전혀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민준 씨, 오늘도 늦네."


수현은 휴대전화를 쥔 채, 테이블 위의 접시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좋아하는 명란 스파게티를 해놓으려고 했는데."


잠시 후, 그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미안하다, 수현아. 오늘 중요한 수술이 잡혀서 같이 먹지 못할 것 같아."


그의 음성에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고, 마음 한구석에는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러니까 오늘은 수현이가 먼저 먹고, 주말에 가까운 곳이라도 드라이브하러 가자."


그는 덧붙였다.


"그 김에 선일 목장도 들러서 한우 등심도 마음껏 먹고 오고."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피곤한 일상에 파묻힌 채, 감정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수현은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창밖으로 내려앉은 도시의 불빛이 차갑게 깜빡였다.

그녀는 민준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나, 매일같이 반복되는 외로움 속에서 조금씩 지쳐갔다.


그녀는 더 이상 이 상황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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