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서울
이 시간에 차가 돌아다니려나 생각한 것 역시도 나의 착각. 횡단보도까지 나오자 쌩쌩 달리고 있는 차들 앞에서 잠깐 흔들렸던 나의 게으름이 고개를 숙이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이제 2호선 어딘가에서 덜컥 내려 새벽 예배를 드리러 가야 한다. 6시 10분쯤 내리고 보니 한여름의 6시는 꽤나 밝다. 그러면서도 밤새 시끌벅적했을 거리가 조용하고, 누군가에 의해 청소되고, 오늘도 다시 많은 사람들의 발먼지로 가득해지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어색하게 조용한 거리를 바라본다. 지금 퇴근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지금 출근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내가 집에서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인 6시 즈음에 서울은 역시 부산하고 부지런하다.
내가 예배드릴 곳은 공간을 대여하여 만든 예배당이다. 간단하게 키보드와 마이크, 빔프로젝트가 설치되어 있고 아침으로 먹을만한 간식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터벅터벅 가장 맨 앞자리로 가서 키보드 앞에 앉는다. 잠시 기도를 하고 건반 위에 손을 올린다. '나를 위한 자리에 앉았다.'라는 생각보다도 '감사합니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아무리 몸에 익숙해서 악보를 보는 것도, 피아노 앞에 앉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고 자부해도 내 손가락은 피아노와 거리를 두고 있다. 어색함을 달래주고, 또 그 어색함이 내가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약간의 긴장감을 부여해 줌에 흥분상태를 유지하며 예배를 마무리했다.
나는 또래에 비해 남들보다 새벽이라는 것에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어있었던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를 따라 새벽예배를 갔고, 중학교 때는 새벽 예배 반주를 했다. 고등학교 때는 새벽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아침에 더 잘 맞는 사람이라는 걸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어 학원 독서실에 제일 먼저 가는 사람이 되었고 기어코 관리실 키를 받아서 가지고 다녔다. 대학생 때는 1교시를 항상 배치해 두었었고, 통학을 하겠다며 5시쯤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6시쯤부터 서울을 가는 버스를 탔으니 꽤나 고단 했겠다. 휴학하고 공부를 할 때도 새벽에 일어나서 누구보다 먼저 자리에 앉아야 했고, 복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새벽 6시 아르바이트를 했다.
새벽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었다. 새벽기도 반주를 한덕에 중학교 때부터 쉬지 않고 조는 순간들도 있었고, 학원에 일찍 도착해서는 오전 10시만 되면 눈꺼풀이 무거워서 졸음과의 사투를 해야만 했다. 누구보다 학원에 일찍 도착했는데도 나는 수험생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했고, 새벽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로 강의를 들으러 갔을 때 내 얼굴은 회색빛이 다 되어 있었다. (하하 정말 얼굴이 회색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매 순간 졸면서, 수험생활을 실패하면서도 새벽을 애정하게 되었다. 사람이 모든 마음먹은 것들을 성공할 수 없고, 쌓여가는 결과들 속에서 나는 하나씩 배워가는 것들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의 단단한 내가 되었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엄마아빠를 따라 새벽 예배에 가서 엄마의 다리에 기대어 누워있을 때 감긴 눈 사이로 들어오는 조명과, 아빠 등에 업혀 집에 들어가 따듯했던 이불에 누워 잠깐의 달콤함을 느꼈고. 중학교 때 새벽 예배를 하고 학교 가기 위해 할머니댁으로 혼자 걸어갈 때(할머니댁이 학교에서 더 가까워서 눈을 붙이다 등교를 했다.) 보던 시골 새벽 풍경의 어스름함. 고등학생 시절 가장 먼저 독서실을 들어가다 보니 선생님께서 키를 맡겨주시던 날. 수험생활을 하면서 새벽 조용한 시간 혼자 학원에 도착하고, 아무도 없는 빈 강의실을 바라볼 때 문득 '이 자리에 앉는 사람들 중 내가 1등은 못하고, 합격을 못해도, 나는 가장 행복하게 살아갈 사람이다' 생각하던 그날. 추운 겨울 5시 20분 영등포에서 아르바이트를 간다고 버스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리며 집에 가고 싶지만 출근하고 나면 커피머신을 데우고 샌드위치를 만들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채워갔던 그날. 그날들에 많은 걸 느꼈다.
그 많은 새벽의 날들 속에서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고, 길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는 각자 할 일들을 해나갔다. 그 와중에 만난 사람들은 내 인연이 되었고, 나의 단단함을 이루어주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삶에 의미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어른들의 말이 맞다. 난 여전히 혼란 속에 있고 흔들리고 있지만 지나간 날들을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이 많았고, 그저 그 새벽에 좀 추웠던, 가끔은 기가 죽었고, 가끔은 기운이 없었던 나를 한번 꼭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