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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 Mar 03. 2020

국진이빵 그리고 그리움

빵과 커피에 관한 에세이 07


국진이빵


동그란 모양의 투박한 빵. 어느 동네에서나 하나씩은 볼 수 있는, 옛날 빵집의 선반 한 귀퉁이에 소복하게 쌓여있는 그런 빵. 이름도 다양해 누구는 국진이빵이라고 하고, 누구는 주먹빵, 못난이빵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국진이라는 이름은 대체 어떻게 나온 걸까? 설마 예전에 유행하던, 스티커를 끼워주던 그 빵은 아닐 텐데 말이다. 물론 나도 그 빵은 좋아했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학교 매점의 히트 아이템이었으니 말이다. 막 빵을 막 찾아먹기 시작했을 무렵의 나는 무게감이 있고 밀도가 높은 빵을 좋아했다. 예를 들면 스콘, 파운드케이크, 오키나와 빵 같은 그런 것들. 이 시절 내게 빵은 식사보다는 간식, 정확히는 과자의 대용품에 가까웠다. 그래서 본래적의 의미의 빵보단 제과, 디저트에 가까운 달달한 빵을 찾아 먹었었고, 어느 정도의 포만감이 있으면서 씹는 식감이 확실한 이러한 빵들이 딱 취향에 맞았었다. 그중에서도 국진이빵. 이 빵은 일단 가격이 아주 쌌다. 당시의 나는 수입이 많지도 않았고, 간식을 사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고 싶지가 않았었다. 빵을 잘 몰랐던 나에게 비싼 돈을 들여서 먹어야 하는 음식은 빵이 아닌 고기였고 그래서 더더욱 가성비를 따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빵에 빠지기 시작한 것도 재래시장에서 천 원에 4개 하는 빵을 사 먹으면서부터 였으니 말이다. 그 빵들 중 하나가 바로 이 국진이 빵이었다.

왼쪽이 가장 일반적인 국진이빵이다.


자세히 보면 속 내용물이 각각 다르다.

우장산역 송화시장 입구의 빵집. 지금은 사라진 그 빵집에서 팔던 국진이 빵은 겉에 얇게 설탕을 입혔다. 무게감이 아주 뛰어난 건 아니었다. 이런저런 빵이 합쳐진 질감. 손으로 쪼개다 보면 빵이 덩어리 져서 떨어진다. 여긴 식빵과 건포도 위주의 조합이었다. 국진이 빵은 가게마다 은근 다른 부분이 많은데, 보통 식빵이 뭉쳐진 게 가장 많고, 다른 빵(소보로빵, 완두빵, 단팥빵, 밤식빵 등등)들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개중 조금 특이한 국진이 빵은 떡이나 콩배기가 들어간다거나, 겉에 소보루를 입힌 녀석들도 있었다. 그리고 뭐가 들어갔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섞어, 밀도 높고 무겁게 뭉쳐버리는 국진이 빵도 종종 보였고. 물론 나는 당연하게도 후자로 갈수록 더 좋아했다. 그렇게 송화시장의 국진이 빵에서 맛을 들린 나는 맘모스와 더불어 국진이 빵도 찾아 나섰다. 재미난 점은 당시 내가 살던 서울 강서구 일대에는 재래시장이 정말 많아 갈 곳이 풍부했다는 점이다. 일단 목3동시장(등촌시장, 2천 원짜리 탕수육이 참 유명한 곳) 이 시장의 국진이빵은 정말 맛있었는데 어느 순간 달라졌다. 주인이 바뀐 건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사라지기도 했었다. 작년에 다시 갔을 때는 어느 정도 비슷했는데 여전히 미묘하게 달랐다. 여기 국진이빵이 살면서 본 가장 묵직한 국진이 빵이었다. 그리고 화곡시장, 목동시장, 남부시장, 까치산시장, 방화 시장 등... 많은 시장을 들렀다. 물론 시장 말고 일반적인 빵집에서도 국진이 빵이 유명하다는 가게들이 있었다. 일산의 레X쁘X의 국진이빵(주먹 러스크)은 당시에 이미 잘 알려졌던 국진이빵 중 하나였고, 마X츠X의 국진이빵(주먹빵), 우X래도의 못난이 콩볼(이건 쪼금 궤가 다르지만) 등 제법 많았는데 벌써 이것도 몇 년 전이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영양빵
보통 이런 단면이다.

이러다가 맛 들리게 된 또 하나의 빵이 영양빵이라고 불리는 국진이빵과 비슷한 종류의 빵이었다. 이것도 구성은 비슷한데 조금 더 크기가 크고 값이 비쌌다. 크기가 있는 만큼 건조과일이나 콩배기, 밤 다이스 등이 좀 더 적극적으로 들어가 있었고, 주로 시럽을 위에 뿌려 윤을 내고, 수분감을 더했다. 향에 있어서도 국진이 빵보다 더 풍부했는데, 살구 시럽 덕분에 살구 향이 나기도 했고, 시나몬 가루를 뿌려 시나몬 향이 가득한 영양빵도 있었다. 이 빵의 특징 아닌 특징 중에 하나는 빵집마다 편차가 제법 컸다는 점. 어떤 것은 속도 촉촉하고, 이런저런 부재료들이 많아 씹는 재미가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퍼석하고 든 것도 없어 (심지어 시럽도 적었다.) 무맛에 가까운 녀석도 있었다. 덕분에 빵집에 가면 제법 꼼꼼하게 살펴고 집었던 빵. 글을 쓰면서 다시 근처에서 구할 수 있는 국진이빵을 몇 번 구해다가 먹었다. 고새 입맛이 변한 건지, 옛날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물론 개 중 맛있는 국진이 빵은 ‘역시 이 맛이었지!’ 하며 내 입맛이 많이 변하진 않았음을 안도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실 안도라기보다 자기 위안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요즘 나의 많은 부분이 변했음을 느끼고 살기에,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함이 마음 한편에 걸려있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물론 내가 꼭 예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니다. 심지어 나는 국진이 빵을 서른이 되어서야 찾아먹기 시작했으니 그리 옛날이라고 하기에도 뭐하다. 하지만 기억은 언제나 추억이라는 이름이 붙어, 시간의 흐름이 더해지고 그렇게 미화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고.

딱 내가 좋아했던 구성.

국진이빵 세 알과 소보루빵, 완두빵, 단팥빵, 땅콩 크림빵과 소시지빵, 고로케 (뒤의 두 가지는 내가 좋아하기도 했지만, 동생의 말로는 “맛의 균형”을 위해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등을 시장에서 구입하면 보통 만 원이 넘지 않았다. 남는 돈으로 빵집표 초코볼 등을 사서 동생과 집에 오는 길에 까먹곤 했다. 걷는 일이 많아 거기에는 “체력 보충용”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봉투를 풀어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누워 도란도란 예능이나 스포츠 등을 보며 그 빵을 먹었던 시간은 내게 더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미화되어 액자처럼 남았다. 지금의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국진이빵의 맛이 그리운 것인지, 예전의 시간이 그리운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무리 많은 곳을 다녀도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도 그때의 즐거움을 나는 다시 느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분명 국진이 빵이어서도, 동생이어서도 아닐 텐데 말이다. 단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그 시간의 흐름은 사람을 이렇게나 바꾸어 놓았다. 몇 년 동안 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카페와 베이커리를 들르고, 많은 음식을 먹었고, 많은 경험을 했다. 2년 전, 4년 전에 찍던 사진과 지금의 사진을 보면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많이 달라져 있다. 변화의 속에서 나는 편안함이라는 감정을 어느 순간 놓아 버렸나 보다. 아마 SNS를 그만두면 빵을 편하게 먹는 시간이 오려나? 요새 많이 드는 생각이다. 누군가 추운 겨울 붕어빵 한 봉지를  들고 가며 느꼈던 편안한 감정을 나는 국진이 빵 세네 알을 담은 봉지의 묵직함에서 느꼈었는데 말이다. 분명 빵이 내게 만들어주는 시간은 편안함이었는데, 내가 그것을 부담으로 바꾸어버렸다. 잘하겠다는 명목 하에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피드 하나 게시하는데 3분 컷 찍던 시절과 3시간 혹은 5시간 이상도 걸리는 지금

얼마 전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한 번만 카메라와 인스타그램이 없는 하루를 보내보는 건 어떻겠냐고. 알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날 아침부터 빵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래도 말을 듣기는 해 밖에 나갈 때는 카메라를 들고나가진 않았다. 편리하기 위해 구입한 도구는 이제 불편함의 상징이 되었다. 카메라 없이 보낸 그 날은 편하기도 했고, 편하지 않기도 했다. 복잡한 감정 속에 하루를 보냈다. 사람이 옛날을 그리워하는 심정은, 아마 나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고 어느덧 현실이라는 치열한 벽 앞에 서고 보니 어디에 있어도 무엇을 해도 우리는 편안함을 느낄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만성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그 시절의 포근함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다시 찾아오겠지.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이나 학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소소한 간식거리를 사 가지고 폭신한 소파에 앉아 그것을 먹으며 하루를 걱정 없이 잊어도 되는 그런 시간이. 미래가 아닌 “오늘”을 살아도 괜찮은 그런 시간이 말이다.



국진이 빵은 사실 빵집에서 재고처리 용으로 만드는 목적이 강한 빵이죠.

제가 예전엔 이런 무거운 빵을 좋아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가벼운 파이나 크로와상 계열의 빵은 또 선호하지 않았었습니다. 물론  더 비싼 것도 한 몫했지만요.


글을 쓰다 보니 빵만 가지고 적기엔 매번 하는 추억팔이 밖에 되지 않아 조금 살을 붙여보았습니다.

그래서 길기도 길고, 어쩐지 쓸쓸한 내용이 되어버렸는데, 내버려 두려고 합니다.

이걸 적고 있는 지금 저의 상황이 에세이에 반영되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까요.


저는 빵을 비교적 늦은 나이에 먹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전까지 안 먹은 건 아니고 보통 남자애들이 그렇듯, 피자빵, 마늘빵 가끔 크림빵 등을 사다 먹는 정도였죠.

어머니께서 모카빵이나 밤식빵을 종종 사 오기도 했었고요.


그래서 30대 초반의 일을 30대 중후반의 내가 예전이라고 표현하는 게 민망하기도 하네요.

어쨌든 추억은 추억입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저는 가게와 빵을 소개하는 목적이 큰 만큼, 나가지 않을 수가 없는 입장인데요.

사실 가는 가게마다 사람이 없어 비어있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자영업인 카페나 베이커리 쪽도 타격이 크다 보니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기운 내라는 말만 하기에도 다들 지쳐있는 상황이고... 그저, 그저 무사히 최대한 빠르게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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