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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이 Jul 24. 2024

여주역사여행길-북내면 중암리 고려백자가마터 이야기(1)

세계의 역사를 바꾼 것에 ‘철’ 말고도 ‘도자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가장 추악한 전쟁이라 불리는 ‘아편전쟁’은 영국이 중국의 차와 도자기 수입으로 인해 쌓인 적자를 해소하고자 아편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벌인 전쟁입니다.      


역시 차를 사랑한 일본은 도자기를 간절히 원했고, 임진왜란 시기 일본이 데려간 포로들 다수가 도공이어서 임진왜란은 일명 ‘도자기 전쟁’이라 불립니다. 당시에도 많은 국가들이 자기를 개발하려고 노력했지만 자기를 만들어 사용한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도자기 제조 기술이 그만큼 어려운 기술이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도자기가 우리 역사에서도 아주 이른 시기에 속하는 고려초에 여주에서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북내면 중암리에 있는 고려 백자 가마터가 그 증거입니다. 여주박물관에서 진행하는 ‘고려·조선시대 여주의 도자 문화’ 강의와 현장 답사를 통해 처음 그 사실을 접하고. 관심이 생겨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이곳이 여주 도자기 역사뿐 아니라 우리나라 도자기 역사에서도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암리 고려 백자 가마터는 1999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지표조사에서 처음 보고가 되었고, 이후 2001년과 2003년 두 차례에 걸쳐 경기박물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 고려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와 폐기장 2기가 발굴되면서, 용인 서리 고려 백자 가마터, 시흥 방산동 청자와 백자 가마터와 함께 우리나라 초기 가마터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경기지역 초기 가마터 현황/ 중암리 고려백자 가마터 설명

이곳이 고려 초기 가마터라는 증거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해무리굽완’은 우리나라의 초기 가마를 살펴보면 예외 없이 출토된다고 하는데, 중암리 가마터에서도 해무리굽완이 많이 출토되었다고 나옵니다.      

‘해무리굽완’이 어떤 모양인지도 확인해봤습니다. ‘완’은 약 20cm 이하의 지름의 깊이가 있는 좁은 형태의 그릇인데, 그릇의 굽을 깎아낸 모양이 마치 해의 둘레에 둥글게 나타나는 테두리와 비슷하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합니다. 중암리 가마터에서 나왔다는 ‘해무리굽완’의 사진과 해무리 사진을 비교해서 확인해보니 그 이름이 이해되었습니다. 


중암리 출토 해무리 굽완/ 해무리 모습( 출처: 여주시사)

중암리 가마터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아궁이, 소성실, 굴뚝부 등이 잘 보존된 편이고, 가마터 인근 퇴적층에서는 2,200여 점의 자기가 출토되어, 고고학적 가치가 충분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가마 좌우측의 퇴적층은 크게 5개 층으로 구분되는데, 이를 통해 이곳이 꾸준히 백자를 생산하였던 곳으로, 고려 백자의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고 합니다. 

중암리 출토 백자(층위별 모습) ( 출처: 여주시사)

현재는 보존을 위해 발굴 현장을 덮어놓은 상태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여주시사에 실린 발굴 당시의 사진을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양이 출토되었나 놀라워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자기 파편이 많이 보입니다.                                                                             

 

출토당시의 모습/ 현재 보존을 위해 덮어놓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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