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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하이디 Nov 10. 2024

여자바라기 여자

세상엔 많은 여자들이 있다. 내가 만난 첫 여자는 바로 나! 이 여자와 산 지도 곧 세 번째 스물. 두 번째로 본 여자는 바로 우리 엄마. 그녀는 이제 90이 넘었고 요양원에 산다. 나를 스쳐 간 다양한 모습의 여자들을 기억해 내려 한다. 왜냐고? 신기해서다.      

여자가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은 사뭇 다르지 않을까? 그러니까 남자들이 바라보는 여자에 대한 느낌과 조금은 다를 수 있다.     

제일 꼴 봐주기 힘든 여자는 역시 나! 가장 오랫동안 쉼 없이 나를 따라 다닌 이 여자. 그렇다고 가장 잘 아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모르겠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르겠다. 괜찮다고 말하면서 속으론 힘들어한다. 언제까지 감정의 끝없는 시소를 타다 뒤로 넘어져 머리가 터질지 아슬아슬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잃고 넘어져 무릎이 깨질지 도통 불안하다. 이 여자는 밝은 성격처럼 보인다. 밝아 보이는 외면 만큼 내면이 시끄럽다. 생각이 많아서다. 타인에게 인정받아야 편하고 자신에게 더 인정받으려 용쓴다. 일종의 관종인 가 싶을 때도 있다. 이 허허로움을 없애보고자 무던히 애쓰며 살아온 세월이 길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자격증을 따고 평생을 배우고 가르치고를 반복하며 지냈다. 이런 여자 과연 어떨까?      

이 여자의 엄마는 다르다. 순종적이고 밝지만 복잡하지 않다. 가방끈 짧은 이 여자 지혜롭다. 희생정신으로 똘똘 뭉쳐 자식 사랑이 지극한 이 여자. 그녀는 지금 요양원 침대에게 남은 삶을 맡긴 채 흐려진 기억 속에서 세월을 산다. 전두엽 기능이 떨어져 극심한 감정 기복을 겪고 있다. 집에 가고 싶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그녀는 혼자 걸을 수 없다. 정신이 맑은 날엔 덕담이 술술. 그러다 “왜 안  죽어지는지 모르겠다”고 못 믿을 넋두리를 한다. 그녀의 몸, 정신, 그리고 음성은 언제 우리 곁을 떠나게 되는 걸까? 

내가 낳은 나의 또 다른 여자, 딸! 나를 닮지도 안 닮지도 않은 젊은 여자.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여자. ‘안내견 탄실이’ 만화책을 좋아하던 여자. 어릴 적 어린이집 아이들을 줄 세워놓고 집에서 몰래 가져간 과자를 나눠주던 여자. 심한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일본으로 날아간 여자. 10년 동안 혼자 이사를 6번이나 한 이 여자는 말한다. “나를 키운 8할은 바로 고통이었다”라고. 나는 그녀의 고통을 알까? 애정이 깊어서라며 수시로 나무라고 관여하고 조종하려고 했던 엄마 여자 나! 이제라도 진심 어린 용서를 빌어야 할까? “미안하다 딸 여자야!”  

다음 여자는 아들의 여자, 이 여자를 나는 좋아한다. 슬기롭고 영리하며 내면이 부드럽고 강직하다. 블랙의 원피스가 멋스럽게 어울리고 화장 안한 얼굴이 이쁜 여자. 이 여자도 여자를 낳았다. 이제 한 살, 아니 두 살. 귀엽고 작은 천사다. 이 천사를 키워내느라 힘들었을 아들의 여자는 불평 한번 시원하게 안 한다. 밖으로 티를 내는 게 필요하다고 말해준다. 참거나 돌리거나 감추기만 하면 병이 된다고 충고해준다. 잘 웃는 긍정의 이 여자가 앞으로 더 기대된다. 마음대로 기대해서 고운 여자 괜히 힘들게 말아라 나 여자야!.      

도서관에서 나와 결이 같아 2시간 내내 책 읽고 토론을 즐기는 순한 여자. 직장 동료로 3년 동안 잘 지내는 조용하게 똑똑한 컴퓨터 선생 여자. 16부작 드라마를 써서 상을 탄 글쓰기 언니 여자. 음악 줄넘기를 가르치는 허벅지가 튼튼한 동료 강사 여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 영어를 어디서 가르쳐야 하나, 복직은 할 수 있을까 좌충우돌하는 글쓰기 모임 동생 여자. 나이보다 20년은 젊어 보이는 책 많이 읽는 뇌섹녀 독서클럽 여자. 구글 임원으로 퇴직하고 난 후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겠다며 대형마트에서 1년간 물건을 나르고 진열하며 지낸 유튜브 속 모르는 여자. 흐릿한 형상으로 누군지 모르겠는 꿈속 여자. 모진 고통으로 인생이 장례식이 되어버린 소설 속 여자. 13년 동안 내게 행복을 주다 떠난 강아지 여자까지. 수없이 많은 내 기억 속 여자들. 

나는 오늘도 여자. 그리고 내일도 여자. 죽을 때까지 여자라는 사실이 좋은 이 여자. 이 여자에겐 9년 동안을 함께 하고 9년 요양원에 머물다 예쁘게 돌아가신 남편의 어머니 여자가 있었다. 그 어떤 여자보다 긴장감을 나누며 지냈다. 한 남자를 놓고 어긋난 감정을 같은 공간에서 9년 동안 나눴다. 어진 성품을 지녔던 이 여자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젊었고 어렸던 나 여자. 진짜 어른이 되고 나니 알았다. 딸 다섯 낳고 얻은 아들을 사랑한 이 어머니 여자의 마음을. 여자 마음은 여자만이 알 수 있다. 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게 많다. 여자가 불편해도 여자가 부당해도 여전히 여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나. 그 이유는 뭘까?

남자가 싫어서일까? 사실 그런 점도 없진 않다. 군대도 가야하고 예쁜 치마도 못 입고 색조 화장도 못하고. 그러니까 나는 그저 좀 부드럽고 유연하게 꽃처럼 몸과 마음을 꾸미고 가는 여자의 삶이 좋은 거다. 그러면서도 남자 못지않게 강인함을 갖춘. 

각양각색의 여자들을 겪는 동안 여자는 커간다. 커 간만큼 약해진다. 서서히 고개 숙이고 허리 굽혀 땅과 마주할 날이 와도 좋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내가 최고다!’ 외치며 산  떠들썩한 날들을 다 지나왔으니. 

여자라서 좋은 여자. 앞으로도 여여 자연한 여자로 살다 가리라. 

여자야. 너 참 행운이다. 여자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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