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영연이. 내 손 위 시누이는 영순이. 이름만 보면 우리는 자매 같다. 법적으로는 자매 맞다. 영어로 'sister-in -law'니까.
시어머니가 살아계셨을 적 시누이 다섯은 인생 구력이 짧았던 내겐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아니 내 고향 전주 사투리로 말하자면 “ 솔찬히 힘에 부쳐부렀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올해로 벌써 10년이 지났다. 매년 모든 식구가 명절이나 어머니 생신에 얼굴들을 보며 지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다 모이는 건 1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추석이나 설날이면 서울에 사는 셋째 시누이 그러니까 영순 씨 집에 가곤 했다. 요리 박사인 형님은 늘 상다리가 부러지게 장만을 해놓고 우리를 기다렸다. 온갖 산해진미를 배가 터지게 먹여주는 것도 모자라 양손 가득 음식을 챙겨주었다.
2주에 한 번 갖가지 김치를 비롯한 반찬들을 해놓고 가져가라고 연락이 왔다. 형님도 시어머니를 20년 넘게 모셨다. 어른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살던 우리의 공통점 때문이었을까? 웬만한 일들은 문제 될 게 없이 쿨하게 넘어갔다. 아낌없이 음식을 챙겨주는 형님에게 “재료비는 제대로 주고 먹어야지!” 하며 직접 주면 안 받으니 서랍 속에 몰래 돈을 넣어놓고 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누이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나는 형님 집에 가서 자고 오기 일쑤였고 국내외 여행도 함께 다녔다. 사우나를 즐기는 우리는 일본으로 온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탕 안에 들어가 “샴푸가 어디 있지?” 어리둥절하던 내게 바로 스캔이 끝난 형님은 바닥 구석에 놓인 비누와 샴푸를 가리키며 “저기 있잖아”하신다. 뭐든 빠르다. 뇌 품질이 좋은 게 분명하다. 머리숱도 나보다 10배는 많아 뒤에서 보면 60세도 안 돼 보인다. 연예계 정보는 샅샅이 다 꿰고 있다. 온갖 이름도 척척 맞추고 음식 만들고 집안 치우는 데 지칠 줄 모른다.
철의 여인 같은 형님과 떠나는 여행은 늘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뭐든 말만 하면 뚝딱하고 나오기 때문이다. 손목이 아프다면 파스가, 머리가 띵하다면 진통제가 바로 나온다. 심지어 통화 중에 목감기가 들었다고 했더니 말하자마자 하는 말 “그럴 줄 알고 내가 생강 1킬로그램 사다 갈아서 차를 만들어놨어요. 어르신. 누가 누굴 모시는지 몰라.” 정말 형님에게 나는 손길 많이 가는 안 젊은 젊은이이다. 아니, 우리 형님이 늙지 않은 젊은 노인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경험치가 다르다. 거쳐온 환경 그리고 학습된 이성적 판단 기준도 차이가 크다. 달라서 서로의 거울이 되어 줄 수 있다. 우리는 시누이올케라는 완장은 떼고 서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에 집중하니 비정상적 정상 관계가 이루어졌다. 형님도 나도 인생 힘 빼고 살아도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된 시기에 서로에게 선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유쾌한 부채를 든 소리꾼 영순 씨와 북을 치며 장단을 맞추는 고수인 나 영연이의 판소리 한마당이 사방에 울려 퍼진다.
“인생 뭐 있냐. 사서 입고 좋은 거 먹고살다 가는 거지 그지 않냐?”
“맞아 맞아. 얼쑤”
아무리 맞장구를 쳐도 지나치지 않는 찰떡궁합이다. 환상적 콤비가 이대로 가면 영화 ‘델마와 루이스’처럼 오픈카를 타고 자유를 격하게 누리며 멕시코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갈 날이 머지않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심지어 코 고는 것까지 배웠다. 형님은 소프라노 메인 보컬로 골고 나는 알토로 코러스를 넣는다. 우리의 멋진 하모니는 밤에도 쉬지 않고 이어진다.
때론 자매처럼 때론 친구처럼 지낸 지도 벌써 8년이 돼간다. 뭐든 빠르고 정확해야 하는 형님과 이상하게 형님 앞에서는 느긋하고 흐지부지한 내가 어떻게 케미를 맞춰 왔지? “누가 참은 거야 대체?” 원래 “빨리”를 외치는 사람이 더 답답하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성격 차이가 있고 우리의 경우 생각하고 움직이는 속도의 차이가 크다. 아니 사실 그 나이에 형님을 따라갈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아무리 피곤해도 해야 할 일을 미루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너 진짜 빨리빨리 좀 해”
“그놈의 빨리빨리 좀 그만해. 좀 느리게 하면 뭔 일이 나?”
도리어 큰소리치는 나를 봐주고 챙겨주는 우리 형님 분명 천사다!
어딜 가나 시누이올케 사이라고 하면 다들 대놓고 놀란다. 15년이나 삶의 내공을 더 쌓으신 형님을 따라다니다 보니 속 좁고 투덜대던 내 몹쓸 버릇이 한 방에 해결된 느낌이다. 넉넉한 인생 시험을 속성으로 통과하게 도와준 고마운 형님. 역시 줄은 잘 서고 봐야 한다.
형님 덕분에 따습고 활기찬 말년을 보낼 수 있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영순 씨! 우리가 그 어려운 일을 해냈지 말 입니다. 지난했던 기억은 날려버리고 지팡이 짚을 때까지 사우나 가고, 예쁜 옷 사 입고, 맛있는 거 사 먹고, 건강한 음식 해 먹으며 재미나게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