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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azy ivan May 07. 2024

태평양을 건넌 이유

1997년 이민기



우리 아빠는 한국에서 사업을 크게 했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데 사업을 크게 했으니

집에 일찍 들어와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일은

한 해 열손가락 꼽았을 거다.


문제는 우리 엄마가 한국의 여느 순종적인 여인 타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관심과 사랑이 늘 중요했고

아빠에게 우선순위에 밀리는 걸 참지 않았다.


결혼 직후부터 우리 엄마는 시어머니, 즉 나의 친할머니와 아빠를 두고 쟁탈전을 시작했다.

 

할머니에게 아빠는 아들 그 이상이었다.

사고만 치는 큰아빠랑 늘 비교되며, 조용한 선비 성향의 할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대소사를 척척 해결하는, 어려부터 키도 크고 운동에 공부도 잘하는 우리 아빠는 할머니 마음에 차는 세상 유일한 존재였고 때때로 할아버지보다 더 믿는 아들이었으니 결혼했다고 며느리에게 홀랑 뺏기는 걸 눈 뜨고 보고만 있을 리 만무했다.




문제는 우리 엄마에게 할머니의 “금지옥엽 내 아들 스토리”는 할머니 사정일 뿐이라는 거였다.

있는 집 장녀에 당시 170cm의 장신으로 거칠 것 없었던 엄마는 사업가셨던 외할아버지의 대담함을 고대로 물려받은, 본인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여장부였다.

“결혼을 했으면 이 남자는 오롯이 내 남자. 공동 소유는 정중히 거절하겠어요 어머니“가

우리 엄마의 변함없는 스텐스였던 것.


그 강대강의 싸움의 끝은 늘 부부싸움으로 이어졌고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젊었던 우리 엄마는 파이팅은 넘쳤으나 영리하게 이기는 싸움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린 내 눈에도 중간에 끼인 아빠는 나름 열심히 하지만 지혜롭지 못하게 아빠만의 방식으로 엄마를 사랑했다.

본가를 둘러싼 싸움은 웬만하면 피하는 쪽으로

혹은 그렇게나 스트레스가 쌓였다면 돈으로라도 풀라는 쪽으로 무마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저 언 발에 오줌누기 일 뿐,

싸움은 계속 됐고 둘은 지쳐갔다.




당연히 아빠의 이민 결심에 가장 큰 난관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당연히 금지옥엽 아들의 이민을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결국 마땅히 나온 탓은 우리 엄마의 몫이었다.


”내가 며느리를 정말 잘못 봤다!!“


사실 아빠는 신혼 때도 시집살이를 하던 엄마가 너무 할머니와 사사건건 부딪혀 나를 낳고 얼마 안 되어 정말 말 그대로 수저 두 벌에 목화이불 한 채만 가지고 야반도주를 한 전적이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당시 야반도주 같은 돼먹지 못한 수단으로 분가하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결국 이기는 싸움을 할 줄 알았던 연륜의 할머니의 설득으로 1년도 못살고 다시 합가를 했었다 한다.


그런 역사가 있었던 탓에 할머니는 이번에도 설득을 하면 되리라 안일하게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아빠가 할머니에게 꺼낸 비장의 카드는 아빠의 건강과 우리의 교육이었다.

사업으로 몸이 너무 망가졌고 애들 교육을 위해서라는 이민의 당위성을 조목조목 어필을 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을 올라갈 즈음 아빠가 엄마와 해외여행을 둘만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전에도 둘만의 여행은 있었던 일이라 알았다고 했다.

난 그게 캐나다 이민 답사였다는 걸 한참 후에나 알았다.


사실 아빠는 이렇게 싸우다가는

둘 중 하나가 병에 들어 먼저 죽던지

아니면 결국에 이혼을 하겠구나 싶었단다.


애들에게 편부모 혹은 이혼가정은 만들어 주기는 죽어도 싫다는 생각에 이르러 돈이 문제가 아니다, 사업을 정리하고 이민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엄마도 아빠의 이민 제의에 처음에는 외가와 떨어지는 게 싫어 No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더 이상 고부 갈등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 하나에 No의 이유들은 의미가 없더란다.


우리 엄마는 결국 그렇게 아빠를 오롯이 차지했다.


우리는 1997년 5월의 마지막 주에 캐나다에 도착을 했다.

내가 고 3을 올라간 지 2달 만이었다.

고로 확실히

우리 가족의 이민은 교육 목적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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