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준란 Mar 31. 2023

인천의 '배다리 역사마을'

책사의 책문화공간 이야기 


 

예전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갯골이 있어 ‘배와 배를 연결해서 다리를 만들어 건너다녔다’, ‘배가 드나드는 다리가 있었다’ 등등의 연유로 이름 붙여진 배다리역사마을. 인천 동구의 금곡동, 창영동, 수도국산, 동인천역, 중구의 도원역까지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인천 역사문화의 모태’라고 말할 정도로 개항 이후 근대 종교와 교육, 산업, 노동, 교통, 상업의 시발지였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헌책방 거리로 유명했으나 도시 확장에 따라 지역적 특색이 무뎌지고 사람들의 관심의 밖으로 밀려나 생기 없는 마을이 되었다. 이 마을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마을 중간을 관통하는 산업도로 공사를 주민들과 시민문화단체 및 활동가들의 힘으로 막아내고 현재는 문화와 예술의 옷을 입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인천의 역사와 추억이 서린 정감 있는 장소로 재창조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벨서점©최준란


#배다리 역사마을 만들기 과정 

배다리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중·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를 위한 주민 대책위원회’(이하 주민 대책위)와 인천 지역 시민문화예술 단체와 활동가들이 모여 조직한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이 중심이 되어 상호역할 분담과 공조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벌여나갔다. 도로 관통이 초래할 여러 가지 피해 사항들을 공유하면서 공사 중단과 무효화를 요구하는 성명서 발표와 기자회견, 그리고 항의 집회를 개최하였고, 공사 자체의 문제점과 부당성, 더불어 배다리만이 지닌 역사 문화적 가치를 대·내외에 알리는 작업, 이를테면 지역 언론매체에 칼럼을 싣는 것이나 소식지 발간, 포럼 및 초청강연 등을 마련하였다. 배다리 사태를 듣고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 활동가들의 주도로 매달 한 번씩 문화행사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와중 또 하나의 강력한 쓰나미가 몰려왔다. 다름 아닌 갈라진 배다리역사마을 한쪽을 포함하는 ‘동인천 주변 재정비촉진사업’(이하 재정비촉진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2007년 5월에 지구 지정을 한 후에 같은 해 주민설문조사, 2008년 개발계획 수립, 2009년 초 주민 설명회 등의 행정절차를 차곡차곡 밟아오고 있었다. 이 계획이 구체화되어 배다리역사마을의 역사적 공간들이 사라진다면 산업도로를 애써 막은 보람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시민모임 차원에서는 두 가지 사안에 같이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배다리 에코뮤지엄(역사문화마을)’이라는 개념의 대안적인 도시재생 방안을 내세워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활동과 사업을 벌여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 모임’을 ‘배다리를 가꾸는 인천시민모임’으로 명칭을 바꾸고 구호 또한 “산업도로 반대”에서 “배다리는 살아 있는 인천의 역사입니다”로 변경했다. 2009년 4월에는 마을 주민을 포함하여 인천 지역 시민들 총 250여 명이 참여하여 “도시개발에 있어 인간적 삶의 가치에 기초한 도시철학과 문화적 상상력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배다리 문화선언’을 선포하였고 같은 해 9월에는 ‘배다리 책방 거리 보존 및 에코뮤지엄 조성을 위한 배다리 역사·문화지구 지정 촉구 시민서명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그 자체로도 많은 의미와 성과를 내었지만 2009년 10월 재정비 촉진사업의 마지막 행정절차인 주민공청회를 결사항전의 의지와 태도로 막을 수 있었던 명분과 근원적 힘이 되었다. 그리고 인천 지역 역세권을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왔던 인천시의 도시재생사업은 결국 주민 설문조사를 다시 하는 등 전면 재검토로 바뀌었으며 이듬해 초 배다리역사마을은 산업도로를 지하화하고 재정비사업을 약속 받기에 이르렀다. 


#배다리 헌책방마을 

1950년에 문을 연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한국전쟁 후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하나둘 모여 만든, 배다리역사마을 청년들의 학문을 이어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생긴 거리로 문화와 역사가 서린 곳이다.『토지』로 유명한 박경리 선생이 이곳에 헌책방 1호점을 열기도 했다. 또한 해방 이후 국내 최초의 문예지『문예탑』,『동화세계』가 태동한 곳도 배다리다.

드라마 <도깨비> 배경으로 나온 한미서점©최준란

예전에는 40여 곳이었던 헌책방이 지금은 집현전, 아벨서점, 한미서점, 삼성서점, 대창서점 등 단 다섯 곳만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단순히 책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를 팔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오늘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지키는 여러 헌책방가운데 ‘아벨서점’은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인천 안팎으로 알리거나 지키는 ‘마당쇠’ 같은 살림꾼 노릇을 한다. 헌책방 ‘아벨서점’이 갖춘 책은 수로 보아도 무척 많아 서울에 있는 웬만한 헌책방보다 알차다고 할 수 있다. 

 아벨서점 내부 ©최준란


아벨서점은 헌책방을 두 개 운영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서점 내 2층 다락방에서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시낭송회도 열고 있어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얘기도 나눈다. 사진 공간 배다리는 아벨서점과 한미서점 사이에 있는 인천 최초의 사진 전문 갤러리로 무료로 사진전을 개최하여 사진작가 활동을 지원하는 곳이다. 생활문화공간 달이네는 북카페 및 나비 날다 책방 및 게스트하우스이자, 뜨개 작업실이며, 꽃과 배다리 안내소를 겸하고 있는 복합생활문화공간이다. 어린이들이 뒹굴며 책을 볼 수 있는 공간, 고양이 책 약 500권과 고양이 사진, 고양이 소품들이 있는 공간, 배다리를 여행하는 출발점이 되는 배다리 안내소 등이 있다.


사진 공간 배다리 ©최준란


배다리역사마을 만들기에 앞장선 사람이 있다. 대안예술공간의 스페이스 빔 민운기 대표다. 2007년 우연히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배다리역사마을을 방문한 민운기 대표는 일대가 산업도로 공사로 전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배다리에 눌러앉았고 문화와 역사가 서린 배다리역사마을을 보존하는 데 앞장서는 공간, 스페이스빔을 만들었다고 한다. 스페이스빔의 ‘빔’은 ‘비어 있다’, ‘비우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공공성과 지역성, 자율성을 모토로 안으로는 나만의 자본주의적 욕망을 비우고, 바깥으로는 도시공간에 작동하는 일반적인 권력에 대항하여 이를 비운 후 시민들의 자발적, 자율적 관계로 다시 채워질 수 있도록 하였다. 

스페이스빔은 1910년부터 1996까지 운영된 옛 인천 양조장 건물을 약간의 수리만 거쳐 활용하고 있는데 70여 년의 양조 산업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채 예술과 문화가 만나 다시 태어난 특별한 ‘대안 예술공간’으로 여러 예술창작활동을 한다. 예를 들면 ‘도시포럼’이라고 해서 도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시각』지라는 지역 미술 비평지를 만들어 격월간으로 발행하고 있다. 스페이스빔은 아늑하고 감성적인 소품들로 가득하여 마치 골동품 박물관에 온 것 같다. 1층은 전시 공간, 2층은 사무실을 겸한 카페로 활용되고 있다. 배다리 문화 안내 책자,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들이 있으며 자유롭게 차를 타 먹을 수 있다. 



배다리역사마을의 재생을 이끈 주체는 ‘배다리 주민’과 ‘인천 지역 시민문화예술 단체와 활동가’이다. 이들은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배다리 지역의 자원을 지켜낸 점에서 문화적인 도시재생으로 재평가받게 되었다. 

발터 벤야민은 ‘살아가는 건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라고 했다. 인간은 도시의 건물, 건물의 내부 환경과 같은 틀 속에 인간 실존 양식의 실마리이자 지나온 경과의 표시인 ‘흔적’을 남기고 도시가 이 흔적을 기억의 저장고로서 보전한다고 본 것이다. 이 흔적을 읽는 것이 도시를 연구하는 주요 방법론이고 이 흔적들은 문화적 기억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참고자료- 

민운기. (2015). <배다리역사문화마을 만들기 과정과 활동개요>. 한국문화예술교육 진흥연구원. 

최준란. (2017). 《책문화공간과 도시재생》. HUIN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