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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Apr 01. 2023

이태원의 다양한 책방들

책사의 책문화공간 이야기 


    

이태원은 그 자체로 서울의 20세기와 21세기라는 시대의 무늬라고 할 수 있다.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지역 이름은 용산, 해방촌 등이다. 해방촌은 1945년 광복과 함께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월남한 실향민이 자리를 잡은 곳으로, 해방 후 그곳에는 서민들의 애환과 비참한 삶, 역사적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무허가 판자촌이 즐비했다. 용산은 예로부터 외국군이 주둔해왔다. 고려 말에는 일본 원정을 준비하던 원나라 군대가, 조선 말기에는 청나라와 일본 군대가 주둔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있었고, 한국전쟁 후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왔다. 그 자리에 용산가족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그후 1990년 이후 외국인 노동자가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이질적인 인종・언어・종교・문화를 가진 이주민 소수자들의 집단 거주지역이 형성되었다고 하였다. 


1997년 9월 27일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한강진역 간 1.4km 지역이 이태원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이태원은 문화예술 혹은 상업지구로 점차 바뀌었다. 2000년대 이후 용산(용산구)에는, 특히 이태원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가 공존하는 젊은 문화 향유자들이 모여들었다. 한남동에는 삼성미술관 리움이 2004년 문을 열었고, 인근에 각국의 대사관이 밀집해 있으며 여기에 더해 동성애자 클럽, 트랜스젠더 클럽 등도 존재한다. 이태원은 문화 다양성이 공존하는 곳이다. 


©최준란

한편 이태원이 문화예술 공간들로 변모한데 이어, 2016년 여름 방송연예인 노홍철이 해방촌에 책방을 열면서 책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주목받게 된다. 다양한 인종에 복합적 문화적 특성을 지닌 다문화공간으로서 이태원의 다문화 상권이 성숙해지며 문화예술이 있는 공간으로 인식이 변했고 이에 따라 내국인의 유입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태원은 새로운 책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태원 책문화공간의 특징  

먼저 40년이 넘은 영어 중고서점도 존재한다. 용산의 변모는 특유의 문화적 특성과 어우러져 특색 있는 동네 책방의 개점을 불러왔다. 2016년 방송인 노홍철이 ‘철든책방’을 이태원에 오픈한 데 이어 2018년 2호점으로 ‘철든가정식책방’을 열었다. 2020년 책과 베이커리가 있는 '홍철책빵'을 후암동에 열었다. 또한 독립출판 전문 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부터 영화 관련 책들이 많은 ‘별책부록’, 문학 중심 독립서점 ‘고요서사’ 등이 속속 들어섰다. 경리단길에 위치한 ‘포린북스토어(FOREIGN BOOKSTORE)’는 오래된 외서 중고서점이다. 성 소수자들을 위한 퀴어 서점인 ‘햇빛서점’도 있다. 이태원에 있는 서점 몇 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스토리지북앤필름 내부©최준란


첫째, ‘FOREIGN BOOKSTORE’는 영어 중고서점이다. 포린 북스토어는 쓰레기장에 버려진 미군 부대의 헌 책을 주워 모아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군부대 근처 고물상 등에서 헌책을 수집해 팔던 이곳은 원서 구하기 쉽지 않던 시절에 영어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1973년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현재 ‘2015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입구에 ‘We Buy, Sell and Trade All Kinds of Books’라고 쓰여 있다. 또 다른 영어 중고서점은 ‘What the book’으로 헌책방 중에서 최근 신간 도서를 가장 많이 갖춘 곳이다. 중고서적은 주로 SF 소설과 로맨스 소설로, 작가별로 완벽하게 정리가 이뤄져 있지는 않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작가들의 미번역본이 많아 SF 마니아라면 만족할 곳이다. (아래 링크된 기사를 살펴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포린북스토어©최준란


둘째, ‘햇빛서점’이라는 성소수자들의 퀴어 서점이 있다. 조용한 우사단로에서 노란 네온사인이 눈에 띈다. 2015년 9월 4일에 오픈한 한국 최초의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전문 서점이다. 햇빛서점은 ‘게이들이 낮에도 놀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뒤로」라는 게이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창간호 주제는 ‘군대’였다. 트랜스젠더의 징병 과정을 그린 그림, 군대에서의 연애담 등 성소수자가 군대에서 말할 수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냈다. 


셋째, ‘스토리지북앤필름’은 독립출판물 전문 서점이다. 이곳에는 독립출판물뿐만 아니라 카메라가 기반인 만큼 다양한 종류의 사진 서적들이 기다리고 있다. 독립잡지「워크진」은 책방 주인이 꾸준히 발행하고 있는 사진집이다. 22편으로 마지막 인사를 한 시즌 1이 한 사람이 담아낸 한 도시의 모습을 45~60여 장의 사진으로 구성했다면, 새롭게 발간한 시즌 2는 도시의 모습을 여러 사람들의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으로 채우고 있다.「AVEC」이라는 잡지를 직접 출판하고 있다. 책방 한쪽에는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출판물도 잔뜩 쌓여 있다. 2020년 9월 7일부로 '스토리지북앤필름'은 해방촌이 멀어서 방문하기 어려웠던 손님들을 위해 강남점을 열었다. 본점에서 골라 가져온 국내 독립출판물과 직접 구입한 해외서적을 함께 소개하고 판매한다. 


넷째, ‘별책부록’은 독립출판물 전문 서점이다. 책방 주인이 영화광이라고 한다. 이곳에 가면 영화 관련 서적들이 많이 눈에 띈다. 영화평론집「CAST」를 출간하고 있는데, 특히 디자인 관련 서적이 많다. 이 책방은 처음 홍대 근처에 있다가 이곳으로 이사 왔다. 모든 게 빨리 변하는 서울에서 이태원의 20세기 말 주택가 분위기는 이 서점만의 고유한 특징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동네 이미지 역시 독립서점이라는 개별 브랜드의 이미지에 일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서울 사람들에게도 이태원의 해방촌은 익숙하지 않다. 가기 힘든 동네에 독립서점이 있다는 건 한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다섯째, 2015년에 문을 연 ‘고요서사’는 출판사 편집자가 차린 문학 전문 독립서점이다. 주로 사회과학 서적을 편집했던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전시하고 팔기 위해 독립서점을 차렸다. 문학서를 다루며 800여 종의 책 대부분이 소설, 시, 수필집이다. 사람들이 가기 쉽지 않은 곳에서,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위기라는 서점을 소규모로 운영하는데 잘될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책방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항상 소수의 독자는 있다고 이야기해요.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판매하는 게 의미가 있어요.” 편집자 출신답게 판매하고 있는 문학책도 자신이 읽은 문학서 중심이다. 독특한 대표의 관심을 열정적으로 운영하면서 작가를 초대해 각종 행사, 특강을 많이 하고 독서 모임도 하고 있다. 


고요서사 ©최준란


여섯째,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온지곤지 책방’이 있다. 책방 안쪽에는 강의실, 영화관 등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 책방지기는 ‘우리 실험자들’이라는 모임에서 여러 활동을 진행해왔다. ‘우리 실험자들’이란 주로 인문학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비제도권 단체다. 현재 책방에서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어린이 독서모임 ‘토요서당’도 열린다. 책을 판매하는 서점보다는 동네 사랑방, 서당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앎과 실천’이라는 뜻의 ‘온지곤지 책방’은 이름대로 책을 통한 배움뿐만 아니라 주민들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다음은 이태원 중고서점 FOREIGN BOOKSTORE 대표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참고자료에 있다)    

서점 주인 최기웅은 지금은 사라진 삼일빌딩 옆 청계천변에 처음으로 헌책방을 열었다. 각종 원서 교재들, 대중문화 잡지들과 화집, 카탈로그 등을 놓고 팔았다. 장사는 잘되었다. 덤핑 책 복제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차 유류파동(1973)이 터지면서 덤핑 책 사업은 치솟는 재료비를 견디지 못해 ‘폭망’했다. 

마음을 다잡은 최기웅은 미군부대 쓰레기장으로 다시 돌아간다. 미군 헌책을 수집해 시장이나 종로서적 같은 큰 서점에 넘기는 ‘나까마’(중간상) 일을 했다. 1975년, 지금의 자리에 있던 판잣집을 사들여 조금씩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1층 13평, 2층 9평짜리 작은 이층집이었다. 건물이 완성되고 간판도 걸었다.     

“We Buy, Sell and Trade All Kinds of Books.”(우리는 모든 책을 사고 팝니다.)     

미군부대 쓰레기장의 폐지수집상으로 출발한 서점다운 자신감 넘치는 모토였다. 이렇게 포린북스토어는 영어에 목을 맨 학생과 부모들에게 가성비 좋은 영어 교재 공급처 역할도 해냈다. 끝으로 이렇게 말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책방의 역사를 이어갈 만하다 싶은 젊은이가 나타나면 이 건물과 책 모두를 적당한 시세에 넘겨줄 용의가 있습니다.” 기사에 써도 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기웅은 아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물론이지. 아직은 권력이 내게 있으니까.” 그리고 그는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했다. “가방끈은 짧았지만 영어책 장사로 잘 먹고 살았습니다. 책 팔면서 느낀 건 하납니다. 부디 크라시크(클래식)를 읽어라. 인생을 가르치는 문장은 고전 안에 다 있다.”     


이태원에 책문화공간이 이렇게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태원에 다양한 책문화공간이 생겨날 수 있는 이유로 용산이라는 근대 도시공간을 새로운 매개와 문화적 융합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참고자료

https://www.seouland.com/arti/culture/culture_general/29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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