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있는 ‘지관서가(止觀書架)’ 라는 북카페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저 또한 작년 여름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후로 울산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지관서가를 한곳한곳 다녀왔어요. ‘지관서가’라는 말은 ‘잠시 멈춰 서서 책을 바라본다’는 뜻이에요. 2021년 4월 울산대공원에 1호점을 연 지관서가는 현재 7호점까지 오픈했는데요, 2026년까지 울산에만 20개, 전국에는 100개를 오픈하는 게 목표라고 합니다.
대체 지관서가는 누가 만들고 있을까요? 지관서가는 울산시가 공간을 제공하고 플라톤 아카데미가 기획, SK가 조성하여 만든 울산 시민을 위한 독서 공간입니다. SK가 한 곳당 5억 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기업은 회사 이름이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SK의 소리 소문 없는 후원은 어떤 이유로 이루어지게 되었을까요? SK는 유공(대한석유공사의 후신)을 인수해 1962년부터 운영해 ‘공업지구’가 되었습니다. 공업지구 울산이라는 이미지를 늘 갖고 있었죠. 문화공간, 자연과는 거리가 먼 도시였습니다. 그러다가 2002년 SK가 지원하여 도심에 울산대공원을 만들어 줍니다. 이후 태화강 조성 사업으로 십리대숲이 단장되고 친환경 도시로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이로써 울산은 공업도시에서 생태환경도시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각 지점별 지관서가를 돌아보겠습니다.
1호점은 울산대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울산대공원점의 테마는 ‘관계(Relationship)’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관계에 관련된 도서와 지관서가를 기획한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추천한 동서양 고전과 인생 테마 추천 도서들이 있어 끌리는 대로 골라서 읽으면 됩니다. 제가 처음 방문했을 때는 늦가을 오전 시간이었는데, 창밖으로는 새소리가 들리고 문을 열면 밖에는 숲 냄새가 가득했어요. 북카페 안에서 책을 보면서 저 멀리 보이는 산 풍경은 그야말로 힐링 그 자체였습니다.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계절은 봄입니다. 울산대공원 방문객 수가 가장 높은 5월 장미축제 때 보러 온다면 일석이조겠지요.
2호점은 장생포문화창고 건물 6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장생포점의 테마는 ‘일(Work)’이라고 합니다. 장생포에는 과거에 고래를 잡았던 포경선이 있었습니다. 고래 고기를 보관하기 위해 사용하던 냉동창고와 물류창고는 세월의 퇴락과 함께 버려졌다가 지관서가를 통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통창으로 들어오는 장생포 바다에 정박한 배들과 포구 건너편의 화학 공장들 풍경에서는 울산의 역사가 보입니다. 유리창 밖 일몰의 바다 감상을 추천드립니다.
3호점은 선암호수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선암호수공원점의 테마는 ‘나이 듦’입니다. 선암 호수공원에서 실제 호수가 보이는 선암호수까지는 조금 더 들어가야 되고, 지관서가는 어찌 보면 산속 아파트 단지 옆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노인복지회관이 있는데 이곳에 있습니다. 책은 중년 이후 노년의 삶에 관한 인생서, 실용서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 고백을 하자면 부끄럽게도 이곳에서 추천한 책들 중 아직 못 읽은 책이 정말 많았습니다. 인상 깊은 점은 주문받는 종업원도, 2층 올라가는 계단을 청소하는 직원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많았습니다.
4호점은 유니스트(UNIST) 대학 안에 있습니다. 유니스트점의 테마는 ‘명상’입니다. 대전에 카이스트가 있다면 울산에는 유니스트가 있는데요. 유니스트 도서관 1층에 지관서가가 위치해 이곳 대학생뿐 아니라 외부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조성했습니다. 막상 가봤을 때는 ‘명상’ 콘셉트에 맞게 ‘비움의 공간, 연결의 시간으로’라는 공간으로 느껴집니다. 북카페 안에 있는 동그란 돌과 동그란 의자는 ‘명상’과 어울린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부러웠습니다.
5호점은 울산시립미술관 입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5호점의 테마는 ‘아름다움’입니다. 이곳은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합니다. ‘아름다움’이라는 테마에 맞게 이곳에는 시각예술 관련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1층과 2층에는 테마에 따라 도서가 숭고와 열망, 예술가의 꿈, 그리고 조화와 성찰, 예술가의 말 순서로 배치된 게 눈에 띄었습니다. 이날 미술관이 보이는 창밖을 사진 찍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많이 못 찍었습니다.
6호점은 박상진호수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를 기리며 만들어진 박상진호수공원점의 테마는 ‘영감’입니다. 이곳은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기존 카페를 리모델링해서 지었습니다. 1층은 카페, 2층은 서가, 3층은 전망대로 이뤄졌습니다. 카페 전경은 배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떠오릅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2층 카페에서 창문을 내다보면 눈앞에 펼쳐진 호수 뷰가 최고입니다.
7호점은 경기도 여주 여백서원 안에 있습니다. 괴테마을점의 테마는 괴테의 생과 그의 작품과 닮은 ‘극복’입니다. 괴테 연구에 한 평생을 바친 독문학자 전영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독일에서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괴테와 관련된 시설과 집을 한데 모아, 괴테라는 진취적이고 성찰적인 큰 인물의 생애를 하나의 삶의 모델로 한 ‘괴테마을(Goethe-Dorf)’을 여주의 작은 마을에 조성했습니다. 아래 사진이 '젊은 괴테의 집'인데 이곳 1층에 지관서가가 위치해 있습니다.
괴테마을점은 위치가 여주에 있다 해서 멀게만 느껴졌는데 지하철이 여주역까지 간다는 걸 알고 얼마전 다녀왔습니다. 다시 봐도 괴테마을 사진이 제일 맘에 듭니다. 이렇게 일곱 곳 모두 다녀왔습니다. ~~
이후 8호점은 울산이 아닌 평택에 지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한 수원시평생학습관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2026년까지 울산에만 20개, 전국에 100개가 목표라고 하니 기대해 보겠습니다.
참고 : 지관서가 홈페이지(https://jigwanseog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