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의 책문화공간 이야기
얼마 전 마포 대흥역에 있는 소금나루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고, 염리동 사는 지인이 이곳 도서관을 추천도 있었던 터라 다녀오고 싶었지요. 맨 꼭대기 옥상에 올라갔더니 아파트 사이에 있는 휴식 공간에 시원함이 더해져 힐링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한층 내려와 3층에 벽에 걸려 있는 제 책을 발견하고는 너무 반가웠습니다. 오른쪽 사진을 보면 알겠지요? 오래된 책인데 떡하니 소개되어 있어서 놀랍기도 했는데요, 그 아래 적힌 '레드로드, 경의선 숲길에서 당인리까지'라는 문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사서님한테 인사해야지 해서 찾았지만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레드로드', '경의선숲길'을 둘러싼 '홍대앞 책문화공간'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홍대앞’은 어디를 가리킬까요? 홍익대학교 앞이 홍대앞 아닐까요. 서울문화재단의 《‘홍대앞’ 문화예술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제 연구》(2015)에 의하면 ‘홍대앞’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홍대앞’은 서울의 행정 구역상 마포구에 속하고, 서교동, 동교동, 상수동 주민이 사는 곳이며, 좀 더 넓게는 연남동, 망원동 주민이 오가는 동네를 가리키지. 또 홍익대학교 앞에 자리한 대학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람 만나러 오는 유흥지거나 관광지 이미지가 큽니다.
‘홍대앞’에는 문화적 특성을 지닌 다양한 예술공간이 존재합니다. 갤러리, 공방, 아트숍 등 미술 관련 문화공간과 라이브클럽, 공연장 등 음악 관련 문화공간이 공존해 있습니다. 음악과 미술은 물론 출판까지, 문화예술을 토대로 창조 활동을 향유하고 공유하는 공간이 곳곳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출판사들이 운영하는 북카페와 서점, 아카데미 등 책 관련 문화공간도 눈에 띄지요.
‘홍대앞’은 문화적 토대가 축적되어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역입니다. 지역 사회와 출판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유기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홍대앞’ 출판사는 자연발생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출판사가 밀집된 지역적 특성을 기반으로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카페들이 다수 생겨나 기존의 북카페와 차별되는 운영방식과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홍대앞’ 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1990년대 말부터 ‘홍대앞’은 기존 문화공간으로의 흐름과 더불어 또 다른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문화산업 관련 전문 직종 사무실이 하나둘씩 이곳으로 몰려든 것입니다. 이전부터 존재하던 미술 관련 작업실과 갤러리, 소극장과 더불어 디자인, 광고, 영화, 방송, 사진, 출판, 만화, 패션 등 문화산업 직종들과 전문가들이 넘실거리는 곳이 되면서 ‘홍대앞’은 미술과 음악 분야뿐만이 아닌 복합문화지역으로서의 장소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홍대앞’의 대중문화기획을 결합시켜 인문학과 예술과 인디문화가 결합한 생산자 축제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제1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2005년 10월 처음 개최되었습니다. 이 사업을 담당하며 책 문화예술 사업의 활성화에 힘쓰고 있는 사회적 기업 와우책문화예술센터도 주목할 만합니다. 와우책문화예술센터는 축제 조직과 더불어 ‘홍대앞’의 수많은 출판사와 문화예술단체, 마포구청, 도서관 관련 시설과 연계하여 다양한 책 문화예술 활동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을 통해 출판사, 저자, 독자와 지역 주민을 한데 묶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문학동네에서 운영하는 ‘카페꼼마’는 문학동네의 저자 미팅 장소로서뿐만 아니라 기업의 문학 행사(동서문학상의 독자와의 만남) 장소로도 자주 이용된다. 홍대앞 주차장 골목에 2011년 1호점을 문을 연데 이어, 홍대입구 지하철역 앞에 2호점을 열었다. 현재 두 곳은 사라지고, 그후 2020년 법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카페꼼마는 합정점(2021), 동교점(2021), 여의도점(2022), 압구정점(2022), 역삼역점(2023)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2015년 12월 망원역 근처로 이사온 인문카페 창비가 있습니다. 2012년에 문을 연 인문카페 창비는 홍대역과 합정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출판사의 북카페와 다르게 창비출판사는 창비 아카데미 강좌가 많습니다. 1주일에 두 번 이상 자사 저서를 중심으로 문화 행사를 엽니다. 운영 수익을 내기보다 독자 서비스 장소로 활용할 목적으로 북카페를 열었습니다.
또한 문학과지성사에서 운영하는 문지살롱이 2024년 여름 새단장을 했습니다. 문화예술 관련 대중 강좌와 세미나는 물론, 창작자를 양성하고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과정도 운영하는 차별화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1층에 문지 역사를 알 수 있고, 문지포스트가 있는데 문지 출간 작가에게 손편지를 쓰고 우체통에 넣으면 작가에게 전달해준다고 합니다. 저는 이날 이곳에서 이상의 <날개> 초판 책(?)이 있다 해서 주저없이 샀습니다. 200페이지 넘는 책을 4,000원에 샀어요. 집에 와서 보니 1977년 책이었어요. 이날 완전 득템했습니다. 북카페는 좌석수가 많지는 않지만 미니북토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이고, 반대편으로 10여 명이 함께 세미나 등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홍대앞’에는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카페 못지않게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독립서점입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이 아닌 작고 특색 있는 서점으로 대형 서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립출판물을 전시하거나 판매합니다. 대표적으로 땡스북스, 유어마인드 등이 있습니다.
땡스북스는 북카페 형태의 서점이며 책 디자인 작업을 하는 스튜디오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 곳입니다. 모든 책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점 분위기에 맞추어 선별한 책을 판매하며 책 판매보다는 문화적인 공간,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독립서점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어마인드는 일반 출판사의 책도 취급하지만 소규모 독립출판물을 유통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고 있는 서점입니다. 유어마인드는 2017년 서교동에서 연희동으로 이사를 합니다.
유어마인드와 같이 최근에는 독립서점이 연희동, 연남동으로 옮겨가마 범홍대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서점 리스본’ ‘안도북스’ ‘후란서가’ 등은 연남동에 있으며, 경의선숲길 끝에 ‘책방 연희’가 있으며 ‘책크인’ ‘초콜릿책방’ 등은 연희동에 있는 독립서점입니다.
‘홍대앞’과 ‘출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2016년에 조성된 경의선숲길과 그 안에 생긴 ‘경의선책거리’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입니다. 경의선책거리가 있었고 경의선책거리라는 복합문화공간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과거형이 되었습니다. ‘경의선책거리'는 2016년 10월에 조성되어, 홍대 경의선숲길과 연계된 책 테마 거리로, 마포구는 책거리 부스 등 시설을 활용해 책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습니다.
이러한 출판문화공간인 '경의선책거리'가 10년도 채 안 되어 사라지고, 새로이 ‘레드로드발전소’가 2023년 5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레드로드발전소’의 경의선숲길을 시작으로 당인리발전소를 거쳐 한강, 절두산성지를 연결하는 안전과 문화·관광·자연이 어우러진 관광특화의 거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책문화거리에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책거리문화만의 정체성이 사라진 듯하여 아쉽기도 합니다.
얼마 전 기사에서,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52%가 레드로드를 다녀갔다고 합니다. 2023년 3월에는 3만 명 정도가 레드로드를 찾았는데, 11월에는 그보다 4배 많은 13만 명이 찾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레드로드발전소’가 관광특구에 그치지 않고 책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가 있는 문화예술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곳임을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최준란, 'KOREANA' , Autumn 2024 Vol. 38 No. 3, 명화사, 2024, pp.20-23.
최준란, <책문화공간과 도시재생>, HUIN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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