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
1. 우리 둘째 딸의 태명입니다.
2. 세상 행복하고, 애교가 많습니다.
우리 한방이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나? 학습지 선생님께서 아주 예쁜 미소를 띠시며 한방이가 풀었던 수학문제를 보여주신다.
문제 : 기린이 사과 6개를 담은 바구니를 목에 걸고 있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원숭이가 바구니에 있던 사과 2개를 가지고 갔습니다. 남아있는 사과는 몇 개일까요? 대충 이런 문제였던 거 같다.
한방이의 답 : "기린아 원숭아 싸우지 좀 마라 얘! 내가 다 속상하다 얘!"
(지금 여러분은 수학문제를 보고 계십니다)
선생님의 예쁜 미소처럼 나도 예쁘게 반응하고 싶었지만... 수학과 국어 중 왠지 선택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당혹스러움에 볼이 떨리고 있었다.
대략 이 아이의 삶은 이렇다. 반복적인 사칙연산을 마주하는 한방이의 초점은 시작부터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다. 몇 개를 틀렸다고 해서 아쉬움이나 미련 따윈 절대 찾아볼 수 없다. 세상 쿨하다!
어느 날..
"엄마 우리 반 민지가 100점을 맞아서 우리 모두 축하해 줬어요"
"한방이도 친구들한테 축하받고 싶지 않아?"
"응~ 정말 괜찮아요~~"
진심이다. 이번에도 쿨하다. 수학을 정말 정말 싫어한다.
자유로운 한방이를 수학이란 틀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저학년땐 그랬다.
지금 한방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수학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4학년부터 문제가 제법 어려워지고, 어려우면 당연히 더 하기 싫은 법. 수포자의 길을 가게 둘 순 없다.
1:1 공부방부터 천천히 시작했다. 공부방 문 앞에서 문제집을 안 가져왔다는 얕은수를 쓸 수 있다. 선생님께 미리 몇 가지의 꼼수법을 전달드렸다. 다행히 아직까진 내 손바닥 위에 있다.
그렇게 4학년을 잘 버텨줬고, 5학년 수행평가의 날이 왔다.
난 마무리되는 현장이 있어서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한방이의 전화가 계속 온다. 받을 때까지 할 기세다.
"한방이 무슨 일 있어?"(소곤소곤)
"엄마~~ 나 수학 100점 받았어요~ 나 잘했죠!"
"우와~ 대단하다!"(내 목소리는 대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자신 있는 무기!
"엄마~ 나 수학 100점 받았으니까 학원 끊어도 돼요?"
(훅 들어온다. 당황하지 말자! 정신줄을 놓아선 안된다.)
말문이 막혔을 때 한방이가 이어서 말을 한다.
"학원 그만두면 엄마 좋아하는 아메리카노 계속 먹을 수 있으니까 엄마도 좋잖아요"
그 어떤 훌륭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전화 끊자.."
"네~~"
끝까지 해맑다.
덧붙이기]
난 참고로 달달이 믹스커피를 좋아한다. 우리 한방이는 내 커피우유를 자주 뺏어 먹는다. 아메리카노 작전은 실패다!
내가 슬슬 화가 날 것 같은 느낌을 감지하면 방으로 숨기 바쁜 큰아이와 달리 한방이는 맥주 한 캔을 내 손에 꼭 쥐어주고 씩~ 웃으며 "목마르죠?"라고 말하고 방에 들어간다.
화가 쏙 들어가는 마법을 부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