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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07. 2024

천하무적 그녀들


어색할 텐데...
갈까 말까...


지역카페에 공지가 올라왔다.

동네 엄마들끼리

점심 모임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가고 싶지만 가고 싶지 않은 기분.

만나는 건 좋지만 뻘쭘한 건 싫었다.


사람이 그립긴 했다.

바쁜 남편 때문에

아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늘어가던 시기였다.


그냥 밥 한번 먹지 뭐.

그래 그 정도면 됐어.


식판이 달린

접이식 유아의자를 챙겨

아이와 함께 주꾸미집으로 향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

고만고만한 아기들.


아기를 띠로

서서 밥을 먹

같은 처지의 서로가

그저 반가웠다.


나이는 달랐지만

모두 친구가 되었다. 

여섯 명의 공주 같은

우리가 되자며

'육공주'라는 이름도 지었다.


맥도널드 아이스커피를 든 채

유모차를 밀고

놀이터에만 가도 숨통이 트였다.


맥주 한잔이 간절할 때는

무알콜 맥주로 그 속을 채웠다.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아왔지만

세상에서 가장 닮은 모습으로

비슷한 고민을 나누었다.  


무료로 운영되던

장난감 도서관을 드나들며

아이들은 형제처럼 함께 커갔다.


공동육아란 이런 것일까?


아는사람 하나 없던 낯선 곳에서

한줄기 빛과 같던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거의 매일 만났고

서로를 도우며 위안을 얻었다.


둘째를 출산한 직후에는

도대체 왜 아이가 빠져나간 만큼

살이 빠지지 않는 것인가?

핏대를 세우며 이야기했다.


다이어트 정보를 나누며

당시 유행하던 건  

한 번씩 다 해본 것 같다.


결론은 스트레스 없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었지만.


아이가 아프고 나도 아파

밥 떠먹을 힘도 없던 어느 날에

이유식을 가져다준 친구는

엄마와도 같았고


"못생겼지만 맛은 있어"라며

직접 구운 파이를

시크하게 가져오던 친구는

넘사벽 금손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 

아이 친구 엄마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하원하는 길에

참새 방앗간처럼 

그냥 지나칠 수 없던 놀이터.


그곳에서 몇 시간이고

아이들과 함께 놀다 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고

엄마들은 진이 쏙 빠졌다.

 

"언니는 힘드니까

내가 언니 김치까지 담가줄게!" 라며

한통 가득 김치를 가져다주던

파이팅 넘치던 그녀.


너도 힘들잖아!라고 하면

"나는 괜찮아"하며 웃어 보였다.


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서로의 아이를

잠시 돌봐주기도 하고,

저녁밥 하기 싫다는 친구에게는

우리 집 국과 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꼴찌에서 두 번째로

달려오던 딸을

목 터져라 응원했던

유치원 체육대회 날.


부모 참여시간에

아빠들은 온 힘을 끌어모아

줄다리기를 했고,

엄마들은 두발을 묶고 뛰어

맥주를 쟁취해 왔다.


엄마, 아빠들은 모여 앉아

서로의 맥주캔을 부딪혀가며

부모가 된 우리를

오롯이 즐기고 있었다.


처음 부모가 되어

다들 어설프고 서툴렀던 그때.

나에게는 그녀들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나에게 그녀들은

마을이었고  세상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 사십춘기를 맞이한 너에게 :::
마흔 즈음 찾아왔던 우울증은 빨리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었다.  
우연히 읽었던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제는 나로 살기 위한 '꿈'을 꾸고 있다. 지난 나의 이야기, 독서와 글쓰기로 삶이 변화된 이야기들을 천천히 기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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