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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pr 30. 2024

제발 잠 좀 자자 내 딸아!

사십춘기를 맞이한 너에게


엄마,
아기들은 자는 거 아니면
우는 거밖에 할 줄 몰라?
그냥 맨 정신으로
가만히 있는 시간은
없는 거야?"


좀비가 되기 직전 

친정엄마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내 품에 안겨있는 아이. 


'내가 너를 책임져주마' 

당당하게 외쳤지만 

내 육아 지식은 

책으로 배운 게 전부였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육아 정확히 

어떤 건지 알지 못했다. 


아이를 보면 사랑이 샘솟고 

유모차에 태워서 산책을 다니고.. 

그렇게 행복한 인생이 

시작되는 게 아니었어?


아이를 키운다는 건 

자고 싶을 때 잘 수 없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엄마 여기 있네~" 하면서 

화장실 문을 열고 볼 일을 봤고 

수유를 하다가 가슴을 풀어헤친 채 

잠이 들곤 했다. 


아이를 낳은 뒤에야 

육아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알아버렸다.


우리 아이 등에는 

센서가 달려있었다. 


잘 자다가도 눕기만 하면 

신기하게 눈을 뜨는 마법의 등센서. 


아이를 품에 안고 

한 시간을 토닥이며 

알고 있는 동요를 모두 불러주면 

그제야 딸은 잠이 들었다. 


사방이 쿠션으로 막혀있는 

아늑한 잠자리에 

고도의 기술로 

아이를 내려놓는다.


까치발로 걸어 나와 

문을 살짝 닫는 순간 

'날 두고 어딜 가는 거야?' 하는 듯

날카롭게 엄마를 찾는 딸.


'오늘도 편히 밥 먹긴 글렀네'





남편과는 만난 지 

6년째 되는 날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의 회사가 멀리 있었기 때문에 

퇴사를 하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아쉬움도 잠시, 

현모양처를 꿈꾸며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나에게 새로운 동네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 


마치 게임을 한판씩 클리어하듯 

매일 그곳을 탐색해 갔다.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신혼집을 꾸미고 

소꿉놀이를 하듯 밥을 지었다. 


맛이 있던 없던 잘 먹어주는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통통해졌고 

'결혼하니 좋은가 봐'하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낮시간이 무료했던 나를 위해 

남편은 미니 재봉틀을 선물해 주었다. 


자투리 천으로 삐뚤빼뚤 만들었던 

파란색 꽃무의 촌스럽던 주머니. 


남편은 그 주머니에 

자신의 소지품을 담아 

아무렇지 않게 가방에 넣고 다녔다. 


6년이나 만나고 결혼을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연애 중이었다.


결혼한 지 5개월이 지났을 무렵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 

내 삶에서 

가장 빛나고 행복했던 날들은 

아이를 품었던 

열 달의 시간이었다. 


어딜 가나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 

모든 게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던 세상. 


아이와 함께하는 

세 식구의 모습을 

손꼽아 기다렸다.





2013년 11월의 어느 날, 

25시간의 진통을 겪고 

드디어 만났다. 


평생 책임져야 할 나의 분신, 

내 어릴 적과 

똑 닮은 얼굴로 나타난 

우리 아기


처음 느꼈던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어떻게 젖을 물려야 할지 다. 

기저귀가는 것도 어려웠다. 


아이를 안고 있던 자세는 

부자연스러웠고 

이 잔뜩 들어간 손목은 

보호대 없이 버티질 못했다.


작고 여린 아기는 

완전히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힘차게 모유를 삼키는 모습에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친정엄마가 혀를 끌끌 차실 정도로 

집요하게 아이의  모양을 살폈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평온한 시간이 찾아왔다. 


아이 옆에 누워서 두 눈을 크게 뜨고 

온라인 세상을 염탐하며 

핫딜을 뒤적였다. 


내 물건을 사는 것보다 

아이 기저귀를 사는 게 

든든해서 좋았다. 


맘카페에서 세상과 소통했고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 때는 

뿌듯기도 했다.


자고 있는 아이 

어쩜 그렇게 예쁘던지 

조심스럽게 볼에 입을 맞췄다. 


아이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미안함이 밀려다.


처음으로 아이가 열이 났던 날, 

물티슈 한통을 모조리 뽑아버린 날, 

엄마라고 어렴풋이 말했던 날, 

처음 식판에 밥을 주던 날.. 

쉽게 잠들지 않는 아이를 차에 태우고 

동네를 빙빙 돌았던 수많은 밤까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절대 지 못했 감정을 느꼈다.


내 이름보다 

누구 엄마로 불려지는 날이 

점점 늘어갔고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다음편에 계속...


::: 사십춘기를 맞이한 너에게 :::
마흔 즈음 찾아왔던 우울증은 빨리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었다.  
우연히 읽었던 한권의 책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제는 나로 살기위한 '꿈'을 꾸고있다. 지난 나의 이야기, 독서와 글쓰기로 삶이 변화된 이야기들을 천천히 기록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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