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원숭이의 죽음

by 조제

아무도 관심이 없고 그 누구도 말 걸지 않는 한 원숭이가 있었다. 원숭이는 그 자체로서 관심받고 싶어 했다. 따라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자 했다.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기도 했고 특별해 보이고자 철학책이나 유명한 소설의 문구들을 외워서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레 말하곤 했다.

어느 날 가엾은 원숭이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나이는 조금 많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고 원숭이에게 많은 그림을 그려주며 관심을 보여주었다. 지금부터 이 사람을 제이라고 부르겠다. 제이는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풍경이나 건축물을 사진처럼 세세하게 그리는 사람이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는 아래로 향하고 몇 시간이고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원숭이에게 그 행위 자체는 존경스러움을 넘어 경이롭게 느껴졌다.

어느 날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던 제이를 지켜보던 원숭이는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 제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결국 무언가 존재하는 사물을 그대로 베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사실로 존재하는 것을 투명 종이로 덧대어 정성스럽게 베낄 준비를 하고 펜으로 그것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똑같은 모습으로 베끼는 것뿐이었다. 제이가 그림을 베끼는 그 행위에는 커다란 동공(洞空)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로써 원숭이는 예술에 대해 생각했다. 그 생각은 조금씩 원래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향해갔다. 예술이라고 생각되어 왔던 것은 어쩌면 예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었다. 원숭이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와인과 담배 뭐 그런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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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이 지나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즈음이었다. 하루는 제이가 원숭이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원숭이는 들뜬 마음으로 그의 집으로 갔다. 제이는 원숭이를 위해 두부를 잔뜩 넣어 두부찌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된장찌개와 김치를 준비해 놓았다. 원숭이와 제이는 밥을 먹고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제이가 원숭이에게 곁에 누우라고 말했다. 원숭이는 조금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이의 말에 곁에 누웠다. 제이는 원숭이와 스콧 피츠제럴드와 토마스 울프의 관계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원숭이는 모른다고 말했다.

몇 마디를 이어가지 못하고 침묵 속에 나란히 누워있던 제이와 원숭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원숭이는 꿈꾸었다. 푸르른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펼쳐져 있는 하늘 아래에 커다란 협곡이 눈앞에 있었다. 얇고 가느다란 선을 가진 그 협곡은 미국 유타주에 있는 브라이트 협곡의 모습과 비슷했다. 원숭이는 그 협곡 아래에 있었고 말로 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마치 협곡이 원숭이 자신을 껴안아 주는 기분이었다.

잠에서 깬 원숭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곤히 자는 제이의 얼굴, 커피를 마셨던 커다란 머그잔, 액막이 생선이 걸려있는 문, 끝부분이 동그랗게 말린 영수증 조각들…

원숭이는 무언가 허전한 기분이 들어 늘 하던 대로 자신의 꼬리를 살펴보았다. 꼬리는 잘려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꼬리가 잘려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제이의 짓이었다. 제이는 호기심에 원숭이의 꼬리를 잘라버린 것이다. 그때 잘린 꼬리와 함께 원숭이의 마음속에 있어야 할 어떤 것이 뚝. 하고 끊어져 나갔다. 정말로 그것은 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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