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그의 아버지 집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나는 지독한 감기에 시달렸다.
물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목이 부었고,
오한과 열이 이어졌다.
근처 병원에서 받은 항생제를
먹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패딩을 입고 담요를 덮고 자도
아침에 눈을 뜨면 찬공기에 온몸이 시렸다.
하루 종일 누워만 있고 싶은 상태였지만
나는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 내려갔다.
이곳에 있는 동안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소파에는
그의 아빠가 TV나 신문을 보고 있었고,
부엌에서는 벨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미카엘은 소파로, 나는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향했다.
나는 빵 대신 따뜻한 국물과 전기담요가 간절했지만,
식사는 대부분 마트에서 막 사 온 빵에 여러 가지 치즈와 잼,
누텔라를 올려 먹는 식이었다.
미카엘은 벨기에에 있는 동안
식사 때마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었다.
그의 아버지와 벨이 집에 있는 시간에는
나는 일부러라도 자주 밖으로 나갔다.
감기 때문인지, 벨기에의 1월은
밴쿠버보다 더 춥게 느껴졌고
매일 흐리거나 비가 왔다.
내가 어느 정도 회복했을 때쯤
미카엘이 아프기 시작했다.
내게서 옮겨간 것이었다.
그는 나보다 더 심한 열감기를 앓았고
토를 하고 잘 먹지도 못했다.
동네 병원에 함께 갔을 때
나는 의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는 미카엘의 목구멍을 들여다보더니
놀라며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한국에서 “쯧” 하는 소리와 비슷한 것이었다.
벨과 아빠는 괜찮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밤에 자다가 열이 너무 심해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벌벌 떨며 들어가 열을 내렸다고 했다.
미카엘은 아파도 혼자 견디는 데
익숙한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는 벨기에에 도착한 후
일주일에 두세 번은
그의 할아버지가 있는 요양병원에 찾아갔다.
벨기에에 온 이유는 가족들을 만나는 것도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유산을 나누기로 했고
미카엘은 그 몫으로 캐나다 비자를 연장할 계획이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미카엘이 아빠와 벨 앞에 있을 때보다
훨씬 편안하게 웃는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의 가족들은
몇 시간 전에 만났어도
항상 볼을 세 번 맞대며 비주를 했는데
나는 그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서
한 번은 고개를 잘못 돌려
할아버지와 입을 맞춘 적이 있었다.
그는 당황한 듯 웃었고,
그 모습이 미카엘과 닮아 있었다.
그의 유머도 비슷했다.
오늘 어땠냐고 물으면
그는 “그냥 하루하루 놀면서
죽는 날을 기다리는 중이지 뭐” 하고 웃었다.
그들이 들리지 않는 언어로 오래 이야기할 때면
나는 천천히 방 안을 둘러봤다.
창문에는 스테인글라스 썬캐처가 걸려 있었고,
벽에는 수사가 그려준 유화가 있었다.
결혼사진 액자 안에는
그의 아내가 좋아했다던 말린 꽃이 끼워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먹다 남은 샌드위치와
가죽 표지의 두꺼운 책, 낡은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나면 다시 비주를 하고 헤어졌다.
우리는 자주 그를 찾아갔지만
미카엘은 좀처럼 유산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를 재촉했다.
그의 아버지 집에 오래 머무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벨은 목발을 짚고 집안일을 했고
몇 가지 생활 규칙을 반복해서 말했지만
나는 그것들을 뒤늦게 알게 되는 일이 많았다.
한 번은 샤워를 마치고 타월을 두른 채
화장실 앞 방으로 뛰어들어가던 순간,
벨이 갑자기 나타나 네덜란드어로 소리를 질렀다.
바닥에 물을 흘리지 말라는 말이었다고
나중에 미카엘이 전해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 역시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일 이후
나는 빨리 한국으로 가거나
다른 곳에서 지내자고 말했지만
그는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나는 잠깐 머물렀지만,
미카엘은 이곳에서 오래 지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