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
복숭아 향이 짙다.
드넓은 초원, 작은 언덕 위의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의 복숭아 나무.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홀로 고독하게 서 있는 나무는 아름다웠다.
다양한 각도로 뻗어나간 가지와 풍성하게 자란 잎. 그리고 동글동글하게 자란 분홍색 복숭아들. 노란색과 분홍색이 교묘하게 섞인 복숭아는 복실복실한 털로 색깔에 재질을 입혔다.
나는 홀로 나무 아래에 앉아 복숭아를 쳐다보았다. 나무는 혼자였고, 나 또한 혼자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복숭아들의 짙은 향기가 나를 감쌌다. 복숭아 특유의 단 냄새에 취해 어지러이 나무에 기대 앉아 있다보니 입에 침이 고였다. 어렵게 손을 뻗어 하나를 따 내어 입에 가져다댄다.
껍질 채로 씹은 복숭아, 안쪽의 달콤함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달콤했지만 동시에 깔끔했다. 함께 먹게 된 복숭아의 껍질은 셨지만, 안쪽의 압도적 달콤하에 어울러져 융화되었다. 새콤하며 달콤하다. 복숭아 하나에 담긴 그 균형이 어째서인지 완벽해 보였다.
한 입, 또 한 입. 복숭아는 나의 손에서 사라져갔다.
결국 손에 남은 것은 씨앗 하나였다. 원래라면 주변에 던져놨을 것이다. 알아서 자라겠지 싶은 생각이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주변을 둘러봐도 나무는 이 복숭아 나무 한 그루가 전부였다. 그 뜻은 무엇일까. 복숭아 나무가 이 지대에 다른 나무가 생길 수 없게 막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나무가 자라날 때 필요한 영양분을 스스로에게로 돌려 복숭아의 향과 맛을 증가시킨 것이다.
본래 자손을 퍼트리려는 나무들과는 다른, 이기적인 놈이었다. 그 성질은 어쩌면 자연과 어울어지지 않는 기이의 것일지도 모른다. 유전자적 본능을 거스르는 나무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순간 이 나무가 덜떨어진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빠르게 나무에게 사과하며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도 적용된다. 본능을 거스르는, 보편적인 행위에서 벗어나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 사회가 정한 규칙들을 깬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의 자세를 찾은 이들은 그 삶의 방향을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나무가 잘못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자손을 희생해가며 스스로의 생을 늘렸다. 자신들을 희생시켜 자신의 미(美)와 미(味)을 증가시켰다. 자손들을 이용하는 부모들은 쓰레기이다. 자신과 배우자의 유전자에 기인하여 탄생한 존재들이지만, 탄생했다는 것은 독립적인 개체이며 기본적으로 정신은 세계 그 자체에 속박되어 있다. 타인에게 속박되지 않은 순수함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을 타락시키는 행위는 잘못됐다.
복숭아의 향이 마치 피아노 소리 같다. 그 달콤함이 뚝뚝 떨어지며 주변 공기 자체를 달콤하게 만드는 것이 서정적인 피아노와 닮았다. 때로 변주를 하게 되며 달콤한 복숭아의 이면을 보여준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복숭아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에서 그의 자손을 먹고 있는 나는, 과연 어떤 인간일까? 주변 사물과 사람들에 대한 생각과 철학은 결국 나로 귀결되는 것 같다. 나의 존재를 확립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