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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U Tris Aug 29. 2024

여름

무거워서 짓눌리는

 나는 도시 한복판, 차도 위, 차가 양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광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차들이 나를 지나쳐가며 욕한다. 무엇을 하는 게냐고, 더운 날씨에 더위라도 먹은 거냐고.

 인도에서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손짓하며 돌아오라고 한다. 위험하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도로 위를 거닐었다.

 나와 방향이 같은 차들, 다른 차들이 좌우를 빠르게 지나칠 때면 뜨거운 바람이 일며 나의 머리카락을 휘두른다.

 덥다.

 지독하게도 더운 날씨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사거리 한복판이다. 

 이론상 가장 안전한 위치, 차가 좌회전할 때 이곳만큼은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치 않다. 

 나는 힘겹게 들고 온 가방에서 첼로를 꺼냈다.

 함께 끌고 온 의자에 앉아 첼로를 세우고 한 손에 활을 들었다.

 땀방울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미끄러져 내린다.

 나는 천천히 첼로를 켜기 시작했다.

 육중한 소리가 바닥을 타고 도로 위로 퍼져나간다.

 여름철 무더운, 무거운 공기처럼 소리가 가라앉는다.

 땀방울이 눈에 들어와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한번 소리를 내어 여름을 이곳으로 불러왔다.

 한 사내가 사하라 사막을 거닐고 있다. 

 사내의 얼굴은 칭칭 감은 붉은 천에 의해 가려졌지만, 그의 푸른 두 눈만은 숨길 수 없었다.

 등 뒤로 천이 펄럭거렸다.

 모래바람이 전신을 강타했다.

 그런데도 그는 걸었다.

 단지, 물이 필요했다.

 자신의 푸른 눈과 같은 물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우물의 물이 전부 말랐고 아이들이 갈증을 호소했다. 어미들은 젖이라도 짜내 애들에게 먹였지만, 그들도 수분이 부족한데 젖이 나올 리가 있나. 남성들이 물을 가져오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섰지만, 돌아오는 이는 없었다. 결국 자기 몸을 갈라 아이들에게 자기 피를 나눠준 어미까지 나타나자 사내는 마을을 떠나 물을 찾기 위해 걸었다.

 마을을 벗어나 잠시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마을은 사라진 상태이었다. 마치 전부 환영이었던 것처럼. 사내는 속으로 물을 찾기 위해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했음이 이것에 기인했다고 판단했다. 

 그는 걷고 또 걸었다. 걷다가 쓰러지면 일어나서 걸었고, 더 이상 못 걷겠을 때는 천천히 기어가며 나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다 보니 나무 몇 그루가 보였다.

 환각인 줄 알았으나 다가가 보니 오아시스였다.

 푸른 물이 고여있었다. 물 앞으로 다가가 물에 비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천에 휘감긴 얼굴 속 푸른 눈동자는 물의 색과 일치했다.

 아아, 다행이로구나.

 사내는 고개를 물속에 처박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함께 가져온 통에 물을 담고는 그것을 질질 끌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힘겹게 물을 끌며 걷던 사내는 이내 마을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흐릿했던 시야 속에 갑작스럽게 마을은 등장했고 그는 그 근처에 도달하자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물을 가져왔노라고. 마시고 싶다면 마음껏 마실 수 있다고.

 당연히 아이들이 달려와 반길 줄 알았지만, 누구도 다가오지 않았다.

 아니,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이상함을 느껴 마을의 중앙으로 다가갔고, 그곳에서 끔찍한 광경을 목도했다.

 시체가 이곳저곳에 굴러다녔다. 그는 큰 소리로 아는 이들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다급히 둘러보던 그는 시체 전부에 상처가 있었지만, 혈흔이 마을에 많지 않음을 확인했다.

 마치, 누군가 수분 섭취를 위해 피를 전부 마신 것처럼.

 그리고 물을 찾기 위해 옷을 피에 담가 자신을 보호한 것 마냥.

 사내는 터덜터덜 마을 중앙 우물에 다가갔다. 그곳에 놓인 바가지에 가져온 물을 부었다.

 그곳에 비친 사내의 푸른 눈은 떨리고 있었고, 붉게 물든 옷은 지독한 혈향을 풍기며 굳어있었다.

 나는 연주를 멈추었다. 여름의 무자비함이 나에게 느끼게 해준 비극은 나의 첼로 소리에 올라타 퍼져나갔다.

 감히 차도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멀리서 나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촬영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이들이 끔찍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들려준 이야기가 얼마나 잔혹한지.

 그렇기에 여름이다.

 무자비하고, 무거운. 

 모든 것을 짓이겨 뭉개는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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