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마음대로 살아보자고.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었습니다.
그것에 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보았고, 이후 넘어서고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죠.
그러나 그럼에도 넘어서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삶의 중요성.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는 두가지 관점이 존재하죠.
처음에 등장하는 허무주의적 관점.
우주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간 개개인은 먼지만도 못한 존재라는 관점입니다.
저 또한 이 관점에 크게 공감해 한동한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후 등장하는 관점은 우주적인 시야로 보는 행위 자체를 비판합니다.
애초에 우리는 인간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으로서의 시야를 빌려야지, 우주의 시야를 빌려서 무엇하냐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내 인생을 보았을 때 그 중요성을 바라봐야하는 것입니다.
이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어떤 삶의 방향성을 염두에 두어야하는지 일깨워주는데 도움이 됐죠,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나. 즉 사회적인 나입니다.
사회의 시선에 얽매인다는 뜻입니다.
작가가 그것을 의도한 것 같지도 않고 제 과잉 해성이라 판단되지만 그럼에도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삶의 중요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고민하다가 새로운 답들을 몇가지 찾았습니다.
첫번째는 책이었습니다.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책의 초반에서 허무주의를 잠깐 다루는데, 거기에서 발견한 개념이 하나 있었습니다.
'초인'
허무주의를 극복한 자만이 될 수 있는 존재.
세계의 모든 기초적인 가치를 의심하고 해체하는 과정인 허무주의 끝에, 결국 자신 스스로 새롭게 그 가치를 창조해낸 존재.
내 가치 기준을 새롭게 만들어야함을 느끼게 해준 부분입니다.
두번째는 위와 비슷하고도 다릅니다.
이번에는 노랩니다.
'Ian McConnell - Season 1 - EP. 4: Important'
노래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I'm not important and neither are you.
난 중요하지 않아, 너 또한 마찬가지고.
So let's do whatever we wanna do.
그러니까 그냥 하고 싶은거 하자.
Bask in our cosmic insignificance
우주적 보잘것없음에 몸을 맡기고
Soak up this blip we’re livin’ in
우리가 사는 이 찰나를 만끽하자
‘Cause nothing matters anyway
어차피 아무것도 중요하지 아니니까
Isn’t that great?
멋지지 않아?
허무주의를 극복한 듯합니다.
다만 니체의 초인과는 다른 형태로 보입니다.
니체는 새로운 가치 기준을 설립함으로서 허무주의를 극복합니다.
이 노래는, 허무주의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멋짐을 찾아냅니다.
개인적으로 니체의 초인보다는 이 노래 가사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전 아직 허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있고, 삶이라는게 찰나에 불과하고,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이 찰나를 즐긴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결국 제가 죽으면 저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끝날테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잘못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어처피 중요하지 않은데.
저는 그저 이 삶을 최대한의 즐거움으로 이끌어나갈 것입니다.
그 속에서 발생하는 이런 저런 문제들은 뭐 어쩌겠습니까?
물론 저는 제가 행복하고 제 주변이 행복한 그럼 삶을 희망하기에, 남들에게 피해 끼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어쩌면 그런 삶을 살고 싶기에 이 가사가 더욱 와닿는 것 같습니다.
정당화의 목적이 아닌, 방향성의 목적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