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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길 Jun 04. 2024

노력의 성과

배신은 안하네.

 오늘은 전국적으로 6월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었다. 나의 노력을 시험해볼 기회였다. 3개월 전 내가 3월 모의고사를 보았을 때에는 결과가 꽤나 불만족스러웠다. 국어와 수학은 1등급으로 만족한다면 만족할 수 있었으나, 대부분이 쉽다고 말하던, 심지어는 나보다 명백히 평균 성적도 훨씬 낮은 친구들 마저 영어는 쉬웠다고 말했고, 게다가 나보다 결과도 더 좋았다.

 당시의 나는 71점으로 간신히 턱걸이로 3등급을 받았다. 누군가에게는 3등급도 꽤나 쾌거로 보이겠지만, 3월 모의고사 전 나는 수학과 영어 1등급을 예상하고 오히려 국어가 3등급 정도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영어라는 과목이 절대평가인 만큼 1등급이라는 타이틀을 얻기가 훨씬 더 쉬운 존재였다.

 그러나, 내가 3등급, 그것도 71점으로 간신히 받은 점수인 턱걸이 3등급이라는 것은 내게 있어서는 최악이었다. 그냥 3등급이었다면 나는 그리 충격받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평소에 내가 영어 1등급은 누워서 물마시는 정도라고 소리치고 다니던 탓에 내가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자만의 조건 중 하나인 뱉은 말 지키기를 실천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여 내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었다.


 큰소리를 뻥뻥치고 다니면서 결과가 좋아야 주변으로부터 '재수 없는 녀석'이라는 이미지를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와 비슷하다. 물론 내가 자만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당하게 도전하여 성공할 것을 확신하는 그러한 삶의 태도,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큰소리를 치고 증명해내어 입만 산 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를 나는 꽤나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3월 모의고사의 영어 성적은 내가 입만 산 놈이라는 것을 증명한 꼴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경우에는 보통 '재수 없는 녀석'이라는 이미지가 아니라 '그냥 기분 나쁜 녀석'이라는 이미지로 남게 된다. 즉, 나는 고작 영어 성적 하나 때문에 입만 산 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평소 1등급은 쉽게 받을 사람임에도 3등급을 받았음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저 입만 산 놈이 되어 버렸다는 부분에서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6월 모의고사에서는 당당히 1등급을 받아오겠다고 당당히 소리쳤다.


 3월 모의고사를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중간고사를 보았다. 그렇다보니 내신 시험 준비 때문에 모의고사를 위한 공부가 어려웠다. 마침내 중간고사가 끝났을 때는 또 6월 모의고사가 머지 않았었다. 평소에 책을 읽고 잠자고를 반복하며 살던 터였기에, 국어 공부는 평소의 나의 독서로 때웠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며, 또 수학은 1등급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3월 모의고사의 영어를 향한 설욕전을 위해 6월 모의고사 2주전 부터 영어를 미친 듯이 공부했다.

 사실 막 그리 공부했다기 보다는 평소 공부하던 시간에 책이나 수학 공부를 하는 대신에 영어 공부를 했을 뿐이다.


 2주가 남았을 때에는 3월 모의고사 기출문제로 연습했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솔직히 그때의 나로는 6월 모의고사를 그냥 당해낼 수 없었다. 쉬운 것 부터 차근차근히 연습해가며 영어 독해력을 키워나가야 했다.

 내가 무엇을 키워야하고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는 알아도, 시간이 내게는 부족했다. 중간고사 이후로 잠깐 놀았더니 6모가 2주도 남지 않고, 심지어는 6모 이후에는 기말이 한 달도 체 남지 않아서 내신 공부를 또 이어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최단 시간으로 최대 효율을 뽑아낼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처음으로 떠올렸던 것은 '인강'이었다. 영어 1타강사의 문제풀이 강의를 듣는다면, 그래도 비교적 점수가 빨리 오르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시도였다. 그러나 이는 얼마 가지 못해 내 스스로 하지 못한다면 점수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결국 내 스스로 듣기 평가 연습도, 독해력 연습도 오직 내 스스로 하게 되었다.


 국어와 수학이 1등급이 나온 데에 반해서 영어가 3등급이 나온 이유가 무엇일지를 나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1가지의 차이가 있었다. 바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의 차이였다. 국어나 수학은 매일이 생각의 연속이었다. 수학은 설명할 필요도 없고, 수능의 기조가 사고력 시험인 만큼 국어 문제도 그저 지문만 읽고 내용만 습득하면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생각'을 요구했다.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난 영어 문제를 풀며 한번도 '생각'이라는 과정을 걸친 적이 없었다. 그저 학원에만 의존하며 학원을 다니면 잘 해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고의 과정까지 도달했을 때 난 비로소 깨달았다. 아, 나 혼자 고민해야 성적이 오르겠구나, 라는 사실을.

 따라서 6모 전까지 나는 문제 하나하나에 모든 논리를 연결하며 끝없는 생각으로 영어 독해력 연습을 했다. 물론, 단어 암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침내 6모 당일이 되었을 때, 영어 시간에 모든 문제를 다 풀고도 10분이 남은 것이었다. 단,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가 한 문제 한 문제를 다 고민해가면서 풀었음에도 시간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즉, 내가 대충 넘긴 문제, 찍은 문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난 영어 1등급 점수인, 91점이 나왔다. 3모 당일 날 나와 함께 있던 친구들에게 나는 당당히 말했다. "6월에는 1등급 받는다고 했지? 난 지켰다."라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이런 게 바로 '노력의 성과'지.


 그러나 6모에도 문제가 있었다. 영어 점수가 오른 만큼, 수학 점수가 급격하게 하락했다. 이번에는 수학을 향한 설욕전을 펼칠 차례가 되었다는 의미로 난 받아들인다. 떳떳하게 외쳐보겠다.


  "9월 모의고사에선 수학을 찢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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