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턱'없는 생각
지난 2년여의 시간, 우리는 이전에는 몰랐던,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소한 것들의 중요성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우리를 둘러싼 작지만 힘든 '턱'의 세계였다.
엄마가 거동이 불편해진 이후 우리는 휠체어를 자주 이용했다. 운동을 하더라도 휠체어를 타고 공원으로 이동을 하고, 병원을 갈 때면 당연히 휠체어가 필요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우리 일상의 수많은 ‘턱’과 마주한 것이다.
고관절 수술 직후 소독을 하러 동네 병원을 오갈 때는 특히 덜컹거림을 주의해야 했다. 하지만 길을 다니다 보면 어쩜 보도블록은 그리 울퉁불퉁 삐뚤게 놓인 게 많은지......
이전에는 평평한 길로 보였던 길이 휠체어를 밀고 다니다 보니 좌우 경사가 달라 휠체어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렇게 다니다 보면 휠체어에 탄 사람, 미는 사람 모두 불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인도로 올라설 때 2~3cm 될까 말까 한 작은 턱들을 무시하고 그냥 가다가는 바퀴가 ‘턱’ 걸려 앞으로 넘어질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실제로 엄마가 휠체어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다. 엄마가 동생과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시골집으로 이동하던 때였다. 휠체어 승하차 서비스를 신청한 터라 하차역에서 역무원이 휠체어를 밀고 주차장까지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신입이었던지 다소 서툴고, 또 서두르던 역무원이 밀던 휠체어가 보도로 올라설 때 ‘턱’ 걸리면서 앞으로 쏠려 엄마가 떨어진 것이다.
역이나 공항, 병원에서 빌려주는 휠체어의 경우에는 안전벨트가 없다. 공항이나 병원은 내부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지만 지방의 기차역은 주차해 놓은 곳까지 실외 이동이 필수이기 때문에 자잘한 턱과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자칫 방심하면 사고가 생기는 것이다. 당시 타박상 외에 다친 곳이 없어 다행이었다. 동생은 굳이 자신이 밀겠다며 서두르던 역무원에게 화가 났지만, 엄마는 그때도 한 마디만 했다고 한다.
“저는 또 얼마나 놀랐겠냐? 알려지면 곤란할라, 아무 얘기 하지 마.”
또 한 번은 병원 진료를 마치고 오는 길에 식당에 가게 되었다. 큰언니와 셋이 언니가 자주 갔던 식당을 찾아갔는데, 입구에 경사로가 없었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도와주겠다며 오셨다. 결국 셋이 힘을 합쳐 휠체어를 들어 올려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언젠가부터 외식을 꺼려했다.
일상에서 없던 ‘턱’이 생겨 황당했던 경우도 있다.
엄마와 늘 운동을 다니던 길이었다. 매일 다니던 길이라 어디에 턱이 높고, 어느 쪽으로 돌아와야 하는지 훤한 곳이었다. 그랬던 길인데, 어느 날 도로 공사를 하고 난 후 횡단보도에서 인도로 올라오는 길의 ‘턱’이 높아져 있었다. 유모차나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경계석과 도로의 턱이 없던 곳인데, 공사 후 턱이 생긴 것이다. 공사를 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걸을 것만 생각했을 뿐, 휠체어가 그 턱을 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못한 것이다. 미세한 차이라 괜찮을 것이라 여겼을 수도 있다. 결국 그때부터 턱을 피해 차도를 조금 걸어야 했다.
일상의 많은 ‘턱’들을 마주하면서 외출을 하게 되면 미리 알아봐야 할 것들이 날로 늘어갔다.
“휠체어 대여가 되나요?”
대여가 안 되면 휠체어를 집에서부터 가져가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 경우 택시를 부를 때도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있나요?”
2층 이상 장소의 경우 계단 이동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꼭 확인해야 하는 사항이다.
이렇게 이동을 위한 준비가 많아지고, 이동 자체에도 시간이 길어지자 엄마는 우리에게 미안해서인지 외출을 하자고 해도 마다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이런저런 말로 설득해 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역시 무의식적으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멀리 나가는 일을 피하게 되는 것 같다.
‘쓱’ 밀면 넘어갈 것 같은 작은 턱. 하지만 그 턱들은 우리 마음속에서 높은 담벼락이 되기도 한다. 이전 같으면 아무 생각 없이 가로질러 갈 길도 턱이 없는 곳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더 길고 위험한 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생각도 했다.
‘왜 턱을 넘는 휠체어는 없을까?’
턱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턱을 넘는 휠체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마 모든 사람들이 일상의 ‘턱’을 의식하고 살게 되면 그때야말로 ‘턱’이 없는 세상이 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