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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재원 Oct 16. 2024

가출

 아들이 집을 나갔다. 아니, 내가 내보냈다. 따사로운 주말 오후, 시끌벅적하던 집 안은 순식간에 적막이 흐른다. 둘째와 막내는 조용히 밥을 먹고 각자 방에서 숨죽이고 있다. 아내는 소파에 앉아 멍한 눈빛으로 꺼진 티비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아들이 바닥에 흘린 밥풀을 물티슈로 훔치고 양념 자국을 연신 닦는다. 헛헛한 마음을 주워 담을 길이 없어 결국 또 숲길로 나선다.


  나뭇잎 사이로 옅게 스며드는 햇살과 슬며시 와닿는 선선한 바람,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기댈 수 있었던 새소리, 나뭇잎 소리도 오늘은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돈 한 푼 없이 내보낸 아들의 발자취에만 촉수를 곤두 세우게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길을 걸으면서 흐트러진 마음을 정리하고 비워왔건만 아들의 태평한 일상을 맞닥뜨릴 때마다 마음속 시계가 번번이 달음박질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또 한 번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안의 조바심과 염려를 이 길 위에 내려놓는 것뿐이다.


 숲길을 돌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주위를 맴돈다. 문자라도 하나 보내야 할 것 같아 꺼낸 핸드폰에서 이전에  때려서 미안하다고 아들에게 보냈던 메시지를 확인한다. “1”이라는 숫자가 선명히 새겨진. 민망함을 감출 수 없어 핸드폰을 닫으려다 아내에게 온 카톡을 확인한다.

 “지훈이 영어 학원 갔어. 원장선생님이 밥 먹이고 들여보내신대. 우리는 모르는 걸로 해야 돼.”


 이런 걸 웃프다고 하는 걸까? 아들의 행방을 확인해 다행스러우면서 한 편으론 이게 무슨 민폐인지 선생님께 죄송할 따름이다. 결국 이번에도 아비라는 사람이 반추와 번민에 묻혀 헤매는 동안 아들은 알아서 제 길을 꿋꿋이 걸어가고 있다. 과연 내 자식이 맞는지… 아들의 무한 긍정과 회복 탄력성에 번번이 놀라게 된다.


빼꼼히 현관문을 열어보니 아들의 슬리퍼가 보인다. 옅은 한숨을 내쉬며 굳게 닫힌 아들의 방 문을 지나친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지난한 오늘이 이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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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보낼 거면 밥 사 먹게 돈이라도 좀 주지... 호기롭게 문을 박차고 나왔는데 배가 고파 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슬리퍼만 질질 끌다가 준희한테 문자를 보냈다.

 “야, 뭐 하냐?”

 “집에 있어.”

 “배 고프다. 편의점 가자.”

 “안돼, 나 혼나서 못 나가.”


에이 씨… 갈 데가 없다. 돌고 돌아 아파트 상가 2층 학원 앞에 섰는데 문이 닫혔다. 이제 배가 좀 많이 고프다. 몇 번 망설이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저 지훈인데요. 오늘 학원 안 해요?”

“응, 일요일은 쉬지. 왜?”

“아… 그냥요. 끊을게요.”


 복도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다!

“지훈아, 선생님이 지금 갈 테니까 잠깐 기다려.”

“안 오셔도 돼요.”

“학원에 일이 있어서 가는 거야. 금방 갈게.”


순대 국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배가 어느 정도 찼으니 게임을 좀 해야겠다.

 “지훈아, 무슨 일 있니?”

 “아니요.”

 “엄마한테는 비밀로 할 테니 집에 가자. 선생님이 태워다 줄게.”

 “괜찮아요.”


 결국 못 이긴 척 선생님 손에 붙들려 집에 왔다. 다행히 아빠가 없다! 엄마도 별 얘기 없고 내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이런 거라면 가끔씩 집에서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한 시간 후


 화장실에 가려고 방을 나왔는데 아빠를 마주쳤다.

 “밥은 먹었니?”

 “어.”

 “돈도 없잖아? 또 삼각김밥에 라면 사 먹었어?”

 “제대로 된 거 먹었어.”


 추궁받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화장실 문을 닫았다. 다행히 더 이상 아빠도 잔소리를 안 한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특별한 하루, 두고두고 기억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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