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찾아온 12월
올해도 외롭고 쓸쓸한 연말
올해도 어김없이 12월은 찾아왔다.
TV에 비치는 도심 풍경 속 크리스마스 캐롤과 곳곳에 놓인 화려한 트리들로 장식된 12월.
시골에 사는 내게 12월은 더욱 커진 공허함과 쓸쓸함이 찾아오는 달이다.
강원도 끝자락의 첩첩산중에서의 겨울이란 낭만이 아니라 끝없는 제설과 빙판길과의 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도심의 설레는 연말 분위기와는 다르게 시골의 연말은 묵직한 고요 속의 적막 그 자체이다. 지나가는 사람도 볼 수 없고, 눈이 오지 않는 날엔 길게 언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만 요란하다.
이런 곳에 사는 나는 대체로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며 살기에 급급했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거대한 감옥 속에 갇혀 매일 시간이 빨리 가길 바라면서도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한 살을 더 먹고 싶진 않았다.
때문에 난 늘 12월에 양가 감정을 가지며 12월이 오길 바라면서도 오지 않길 바랬지만 내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시간은 꾸준히 흘러 12월은 벌써 와버렸다.
12월 1일의 아침, 주말이지만 오늘도 남편은 출근을 해야 해서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며 베란다 문을 열어 하늘부터 살폈다. 깜깜하고 어두운 하늘엔 안개가 자욱해 집 바로 앞의 산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날씨가 좋아도 이 낯선 곳에서 갈 곳이 없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눈이 오거나 구름이 가득한 날엔 이 곳에 완전히 갇혀버린 느낌이 들어 난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을 유독 힘들어한다.
그래도 며칠 전 폭설 이후 도로에 쌓인 눈은 많이 녹은 것 같아 다행이다,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면 불안한 마음에 피가 날 때까지 손을 뜯는 나는 집에서도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매일 무언가를 만들다거나 글을 쓰든 청소를 하든 뭐든 하는 편이다.
무언가를 할 때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조금은 무뎌지는데, 꼭 오늘같이 날이 어두운 날이면 외로움을 잊기 위해 끝없는 사투를 하다가도 종종 무너져버리곤 한다.
글을 쓰며 적막한 집에 내 타자 치는 소리만 가득한 걸 듣다가 아침 아홉시쯤 지나 윗집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발소리를 듣는다. 익숙한 쿵쿵거리는 발걸음 소리, 낡은 아파트에선 발소리가 유독 크게 울리지만 어느새 내게 위층 사람들의 발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이곳에서 혼자가 아니라고 안도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이젠 위층의 얼굴도 모르는 이웃의 발소리가 반갑다.
적어도 콘크리트를 사이에 두고 가까운 곳에 사람이 있는 거니까. 한동안 그 발소리를 듣다가 또다시 TV를 켠다.
외국프로그램일 때도 있고 흥미도 없는 애니메이션일 때도 있다. 켜놓고 대부분 보진 않기 때문에 그게 뭐든 상관없다. TV는 내게 유일하게 이 곳에서 사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수단일 뿐이다.
추운 것 같아서 집 안의 온도를 한껏 올려놓아 집이 덥다.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가는 남편은 집에 들어올 때면 항상 집이 덥다고 한다.
나도 더운 것 같은데 늘 춥다.
추워서 자꾸만 옷을 껴입다 문득 이 추위가 외로움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12월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이 곳에 혼자다.
혼자라는 사실이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외로운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날로 커진다.
어디든 가고 싶다. TV가 아니라, 내 옆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고 싶다.
카페에서 도시 사람들은 이어폰을 꽂고 작업을 하던데 나는 아무리 시끄러워도 이어폰을 꽂지 않는다.
내겐 늘 그리운 소음이다.
오늘도 그리운 소음을 찾아 혼자서 어디든 가야 할 곳을 찾는다.
올해 12월은 내겐 너무 외롭고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