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기농 제주 말차 바닐라 케이크
설날 연휴 나는 부모님과 제주도의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언제나 여행은 즐겁지만, 맛집과 길을 찾고 부모님의 수발을 드는 여행은 마냥 신나지만은 않다.
그런 나를 위해 마지막 날은 부모님은 골프 여행, 나는 나 혼자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간섭과 잔소리는 멀리한 채 자유로이 음악을 틀고 운전을 하며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나는 제주도의 비건 디저트를 시도해 보고 싶었다. 사실 일반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비건 디저트는 뻑뻑하고 맛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약 2년 전만 해도 비건 디저트의 다양성은 부족하였고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정도의 레시피였다. 통밀가루, 오일, 계란이 들어가지 않은 부드럽지 못한 빵. 심지어 인지도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지방에도 비건 디저트 카페 및 클래스를 운영하는 샵이 점점 늘어나면서 소비자의 수요가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행이라는 한정적인 시간 속 비건 디저트를 상업적인 이유만으로 카페를 운영하는 곳보다는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와 공존하고자 하는 카페를 방문하고자 했다.
나는 ‘과연 채식을 추구한다 하여 환경을 보호하고 지구를 아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식품회사에서 약 1년간 근무를 하면서 추이를 지켜본 결과, 채식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단지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보다도 지구와 공존하기 위해서 시작하는 사람도 많았다.
실제로 한국 채식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채식 인구는 2008년 대비 10배 늘어난 15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채식하는 이유로 크게 동물복지, 건강 그리고 환경문제를 꼽는다고 한다.
또한,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육류와 유제품을 줄이는 것만으로 개인은 최대 73%의 탄소발자국을 감축할 수 있다고 한다. 연구 저자 조셉 푸어(Joseph Poore)는 “채식주의자 식단이 온실가스뿐만 아니라 지구 산성화, 부영양화, 토지 및 물 사용 등에 있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가장 큰 단일 방법”이라고 밝혔다. 출처 : 녹색경제신문(http://www.greened.kr)
내가 방문한 <펜고호다>는 ‘편안하다’의 제주도 방언으로 몸이 편안하고, 지구가 편안한 디저트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구움 과자보다는 주로 케이크 종류가 많았으며, 비건 재료를 통해 다양한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펜고호다를 통해 알게 되었다. 맛의 베리에이션 및 재료의 조화가 좋았으며 기회가 된다면 클래스를 통해 유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케이크의 크림과 쫀득쫀득한 시트의 원리를 배워보고 싶었다.
판매하고 있던 메뉴들은 다양했지만 제주도 하면 생각나는 말차가 들어간 ‘유기농 제주 말차 바닐라 케이크’를 선택했다. 블루베리 바스크 치즈케이크, 자몽 얼그레이 케이크, 초코 바나나 케이크 등 비건 디저트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케이크 종류가 많아서 다 먹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실제로 비건 디저트 클래스를 운영하는 친구와 함께 왔었더라면, 사양하지 않고 모든 메뉴를 다 시도했을 것 같기도 하다.
‘유기농 제주 말차 바닐라 케이크’는 쫀득쫀득한 쌀로 만든 시트에 부드러운 두유 크림, 말차의 쌉싸름한 맛이 느껴졌다. 본디 케이크라 하면 버터와 계란이 들어가 부드러운 시트와 퐁신한 생크림의 맛이 느껴져야 하지만, 비건 케이크는 정말 달랐다. 오히려 쫀득쫀득한 식감이 크림과 잘 어울렸으며, 유크림에 섞인 바닐라 보다 가벼운 바닐라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맛에 대해 친구에게 자문을 구하니 두유 크림은 한천이 들어가기에 말캉한 식감을 내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이 말캉한 식감으로 쌀 시트의 쫀득쫀득한 맛을 극대화해 환상의 조합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다. 또한, 비건 디저트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사장님의 노력한 흔적이 이 케이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펜고호다의 비건 디저트들도 기대가 되었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고즈넉한 카페의 분위기가 끌리기도 했다. 나무 인테리어에 테이블마다 올라와 있는 오브제를 사용하여 카페를 방문한 손님들이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비건, 환경보호를 지향하는 사장님의 마음이 잘 느껴졌다.
카페 내부에서는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소비자의 니즈에 맞게 ‘생분해 옥수수 전분 빨대’와 ‘스테인리스 빨대’를 선택할 수 있으며 ‘용기내 챌린지’를 통해 플라스틱 사용을 지양한다.
한 카페에서의 작은 실천이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에게 끼치는 영향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느꼈으며, 가벼운 채식 한 끼가 지구를 위한 작지만 큰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Written by 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