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하는 사람들을 넉다운 시켜버리는 마법의 주문
"야 나니까 이런 이야기 해주는 거야, 객관적으로 너 그거 힘들어"
'누구나 다 그럴듯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인생을 돌아보면 자존감이 거의 바닥을 찍던 시기가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는 별것 아닌 남의 소리에도 괜히 더 귀 기울이게 된다. 정말로 나는 잘못된 놈인가? 혹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내가 시도하려고 하는 건가?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생 때다. 넘쳐나던 패기도 두세 번 떨어지다 보면 금세 바닥나게 되고 위태위태한 상태가 된다. 더군다나 다소 모자라는 스펙에 대기업 준비를 하는 걸 보면 동기들뿐만 아니라 친했다고 생각했던 몇몇 놈들까지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존감이 저점을 찍을 때쯤 나를 거의 그로기 상태로 만들었던 건 가장 가까운 사람 중 누군가의 한 마디였다.
"야 가족이니까 이런 말까지 해줄 수 있는 거야. 네가 그런 스펙으로 대기업에 가당키나 할 것 같아? 눈높이 낮추고 현실적인 곳이나 지원해 봐"
내가 정말로 안 될 놈인가 의심이 점점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할 때쯤, 다행히 원하던 대기업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지극히도 현실적이고 한없이도 나에게 다정한 거라던 그분들의 반응은 글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져 버리더라. 그리고 혹자는 몇 달 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친한척하며 연락도 오더라.
우리나라의 취업률은 약 70% 그리고 그 중 대기업 일자리는 14% 정도라던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럼 대기업 취업률은 대략 계산하면 10% 정도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10명 중 9명은 본인이 경험해 보지도 못한 일로 누군가의 가능성을 평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 참고로 나를 평가하던 그 많은 사람 중 그때든 지금이든 나 이상 잘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뭐 어쨌든 잘 됬으니 된 일 아니냐고? 아니, 그들은 매 순간 새로운 모습으로 어디선가 당신이 그들이 못한 일에 도전하기를 부정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그 에너지를 자기 발전을 위해서 썼으면 조금 더 나은 모습이 됬겠거늘. 유감스럽게도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 자기 자신은 굉장히도 객관적으로 못 보신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사람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랬더니 대부분은 자기 자신의 합리화를 위해서더라. 당신은 할 수 없어야 한다. 그들은 엄두가 안 나서 감히 시도도 못 해봤을 수도 있고, 어중간한 노력 끝에 떨어졌을 수도 있다. 당신의 성공은 그들의 자기합리화를 실패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다.
시도는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다. 몇 번씩 실패할 수도 있겠지. 허나 그것은 실패를 바라고 있는 그들이 옳은 것이 아니다. 당신은 성공으로 가는 길 중 아닌 길 하나를 지워 성공에 더욱 가까워진 것뿐이다. 또한, 모든 것을 떠나서 그들에게는 그런 당신을 평가할 권리조차도 없다.
성공은 원래 소수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경험해 보지도 못하거나 실패한 사람들의 부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마라. 심지어 그가 성공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당신으로서 당신의 삶을 살아본 적도 없지 않은가. 앞으로 누군가 당신의 가능성을 해하려 할 때 주문을 외워라 그리고 보란 듯이 성공해서 넉다운 시켜버려라.
'누구나 그럴듯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겠지. 처맞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