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라는 조직 생활에 대한 고찰
우리 집은 부족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유하게 살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회사 생활하고 힘들 때 마다 퇴사를 생각하면 늘 배수의 진을 치고 있는 느낌도 가끔은 들었다. 가끔가다 보면 보이는 일부 부유한 사람들은 일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아쉬운 것이 없으니 일 처리가 항상 여유롭고 퇴근 시간도 눈치를 안 보더라.
그래서 조금이라도 배짱을 갖고자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직서를 마음에 품고 일했다. 노 리스크 노 리턴(No Risk No Return)이라고 하던가. 그 조그마한 배짱이라도 없으면 후에 회사에서 높이 올라갈 일은 꿈도 못꿀까 봐.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가끔은 신이 있다면 왜 나는 부유한 환경을 가지고 태어나게 하지 않았을까 원망도 가끔은 했었던 것 같다.
그래도 항상 열심히 일해왔다. 회사원에게 회사란 집보다도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긴 곳. 어쩌면 회사원은 죽을 때까지 시간의 50%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는 것 아닐까. 근속연수가 길어 질수록 승진 또 승진, 목표를 향한 내 시야는 한 곳으로 좁아져만 가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독기를 품게 되더라.
하지만 나만 독기를 품고 일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목표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회사라는 곳은 참으로 어지럽고도 기형적인 조직. 처음에 회사가 설립될 당시 어떤 이상적인 시스템과 방향을 추구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각각의 욕심이 뒤엉기고 고인 물들이 많아질수록 깨끗한 물에 여러 색깔의 물감을 타듯 알 수 없는 색이 된다. 그러니까 그런 조직에 적응하다 보면 나도 알 수 없는 사람이 돼가는 거다.
그러다 기념스러운 우리 아이의 탄생으로 육아휴직을 쓸 기회가 생겼다. 처음에는 당연한 권리인데도 쓰기가 쉽지 않더라. 다들 쓰라고는 권장하지만 쓰라고 권장하지 않는 듯한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막달에 휴직서를 냈다. 고민하면서 흘러간 기간도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첫 일 주일은 원인 모를 두통이 찾아왔다. 몸은 떠났어도 마음은 십년 넘게 일한 회사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그래서 가족들과 둘째 주부터는 강제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갔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오는 숨마저 상쾌하더라. 전에 회사에서 업무 중에 항상 뱉어냈던 한 숨은 항상 불쾌하고도 뜨거운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휴직 중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잠시 회사에 나가게 될 일이 생겼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보게 된 사람들의 모습은 시간이 멈춰있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몰두하며 악화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 잠깐의 휴직 기간이 나에게 가져다준 것은 현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맑은 시야였다.
악화하여 가는 모습들도 다양했다. 부하직원을 가스라이팅하며 자신의 승진을 위해 교묘하게 부려 먹는 유형,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자연스레 다른 사람의 탓으로 넘기며 하루하루 버텨가는 유형, 교묘하게 꼰대 짓을 리더쉽으로 가장하며 카리스마를 행사하는 유형. 그리고 거기에 휘둘리며 망가져 가는 성실하고 요령 없는 사람들. 그 순간 단 하나의 생각이 명확하게 머리에 떠올랐었다.
"회사에 나의 삶이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전까지는 사직서를 마음에 품고만 있었지만, 퇴직에 생각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누구는 회사 생활의 최종 목표가 임원이라고 하던가. 나는 회사 생활의 최종 목표가 퇴직으로 바뀌었다. 다른 회사에 또 들어가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의 일을 하면서 내 모습을 찾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금전적, 시간적으로도 더 큰 여유를 선물해 주고도 싶었다.
지금은 휴직이 끝나고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몰두하다 보면 또 전처럼 돌아가게 될까 봐 걱정하는 나에게 동료 중 한 명은 그런 말을 해주었다. "네가 아무리 다시 몰두해도 휴직 전처럼 돌아갈 것 같지는 않아" 그 주문 덕분인지 지금까지도 내 삶은 휴직 전보다는 가볍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일정을 소화해 낸 뒤에는 짬짬이 시간을 내어 부업도 하나씩 해보고 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며 노력하는 중이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좌절하고 싶을 때마다 새로운 일에 대한 경험이라는 생각으로 버텨내고 있다.
휴직 중 보았던 파렴치한 모습의 사람들을 욕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도 누군가의 부모이자,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하나의 존재겠지. 엄연히 이 이상한 조직의 피해자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적응하고 살아남으려다 보면 어떤 모습이든 점점 변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노력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노력해서 결국에 이곳에서 벗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