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파리 Jun 11. 2024

240605 시간은 정말 내게 약이었는가

글(3)

2023년 11월 24일

나와 친구는 첫 책을 발간했다.

많은 목차들 중, 가장 오래 걸리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 했던 당신과의 기억을

'우리'라는 존재가 사라진 후 일 년 하고도 반이 지난 후에 적어내려 갔다.


글 (3) 240602

마지막 글을 쓰고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나의 28년간의 인생과 사랑에 대한 글을 이미 세상에 내보였다. 시간은 어느새 당신과 나와의 관계가 끝난 지 일 년 하고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와 친구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또 여러 가지 감상을 들었다.

사실 조금 무서웠다. 너무 투명한 나를 보이는 것은 아닐까, 나의 바닥의 모습 그리고 바닥보다 더한 지각 안의 이야기들

모든 것이 적혀있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거친 글이었다.

그 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글은 어쩔 수 없었던 건지 당신과의 사랑 이야기였다. 목차를 정하던 23년 여름 주절주절 너를 욕하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닌, 모든 것이 끝난 후의 감정을 담고 싶었다. 처음 글을 적어 내려 갈 때가 떠오른다.

꿈이라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미래를 그려보고자 안정된 삶을 버리고 떠났던 1년, 아홉수라는 말이 딱 들어맞게 29년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지쳤던 한 해였다. 당신과의 글은 가을이 다가오는 이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기에 이불빨래를 하기 위해 나의 보라색 동굴을 나와 겨우 숨을 돌리던 작은 산책로에서 시작되었다.

여느 사랑에 관한 글들이 그렇듯 처음 적었던 글에는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들이 그득해 선선한 바람과 적당한 햇볕의 기분 좋은 날씨에 벤치에 앉아 눈물을 조금씩 닦아 내려가며 3페이지를 가득 채운 글을 모두 지웠다.

그리고 이전과 대조적으로 사랑에 아팠던 내가 아닌, 일 년 전의 나를 투영하여 한 자 한 자 적어내려 갔다. 아마 평생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당신의 험담, 나쁜 이야기들을 입에 담지 못할 것이라는 것.

이제야 우리의 짧지만 찬란한 순간에 당신도 나도 최선을 다했을 터이니, 당신을 제외하고도 행복했던 찬란한 시간을 지우고 싶지 않다. 사랑이 인생의 가장 하위 순위였던 이기적인 내게 찾아온 너와의 사랑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참 많이 다른 우리였다. 술을 좋아하는 나, 취하는 걸 싫어했던 너, 모두에게 투명하게 스스로를 비춰 보이는 나와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 다른 자아를 만들어 살던 당신. 그래서일까?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울면서 보냈다. 이게 당신의 가치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우리는 인연이 아니었던 것일까.

사람과 싸운 게 인생에 몇 되지 않던 내가 너라는 사람을 실망시킬 때마다 스스로를 꾸짖었고 나만의 미래보다 함께의 미래를 조금씩 생각했다.

억울하게도 당신과의 기억들은 대부분 잊히지 않는다. 항상 전화했던 시간, 물었던 질문, 나를 안아주며 나누어 주던 따듯한 온기, 순수하게 감정을 표하는 예뻤던 말투.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은 이별의 고통에 너덜너덜해진 나는 관계가 정리된 후 처음으로 솔직하게 투정과 감정을 내보였다.

당신이 조금은 밉다고 나는 너무 아프다고, 왜 나만 이렇게 울고 이제 없는 ‘우리’의 관계의 생각이 끊이지 않는지. 조금은 당신이 나를 돌아봐주고 안아주러 오길 바랐다. 조금만 내게 시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당신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아직 존재할까.

철부지 20대같이 사랑에 목매고 갈구하는 게 이 시기의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단 두 가지, 나를 사랑했던 내가 사랑했던 당신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첫 번째, 너는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야 자신을 궁지로 밀어 넣지 말고 조금은 투명한 사람이 되어 살아줘

두 번째, 나와 함께한 일 년이라는 시간이 너의 인생에서 조금은 반짝이는 기억이자 추억이길, 찬란하지 못하더라도

이 두 가지만 당신에게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랑의 기준이 네가 되어버려 시간은 내게 분명히 약이 되었지만 흉터가 남았다.

언젠가 같은 일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있기를 네가 항상 평온한 나날을 보내기를 바라며

-해파리 24060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