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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handhan Jul 12. 2024

동물이 나타났다

08 토토

고등학생 때 친하게 지낸 친구는 예쁜 외모와 사교적인 성격으로 늘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에 둘러싸여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특별히 질투하지는 않았지만 간혹 그의 곁에 친구로 있는 나를 무수리 취급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다른 대학을 가서도 자주 만났고 같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깝게 지냈다. 그는 어딜 가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고 사람들은 그의 관심을 얻고자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일이 많을수록 그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거침이 없었고 때론 자신의 태도나 행동이 늘 당연하고 정당한 것처럼 행동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영향력은 내 행동이나 생각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고 혹여 다른 의견을 가진 나를 보면 나 자신을 자기에게 숨기고 있었던 것이 배신이라도 되는 냥 정색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그는 사교적인 성격 덕에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직장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틈에 쉽게 안착한 반면 사회생활이 요구하는 인간적 관계에 대한 부침이 심한 나는 잦은 실직 상태에 놓였다. 그런 불안정한 상황은 어쩔 수 없이 그와 나 자신을 비교하게 되었고 열등감으로 이어졌다. 

그는 일찍 가족으로부터 독립했고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려 애완동물(당시는 반려 개념이 없었음)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의 집에 놀러 갈 때면 자주 개가 바뀌긴 했지만 어떤 경위로 오는지 왜 바뀌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아마 당시 동물과 특별한 애정을 키울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고 나 자신의 위태로운 상태에 매몰되어 주변에 관심 갖지 못한 탓일 것이다. 


어느 날 그가 키우던 개를 아빠에게 보냈고 새로운 개를 사야겠다며 충무로에 가자고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개를 돈 주고 사는 가게들이 충무로에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그를 따라나선 충무로 거리엔 정말 유리창 앞에 개들을 전시한 가게들이 즐비했다. 내 주먹만 한 작은 강아지들이 찢어진 신문지 위에서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새끼 개는 눈도 뜨지 못했다. 그는 찾는 물건이라도 있는 듯 쇼윈도를 꼼꼼히 살피면서도 나에 대한 요구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늘 사람들에게 나를 “불알친구”라고 소개하며 자신이 갖고 싶은 우정의 모습을 나의 동의 없이 요구해 오는 일이 많았다. 그날도 응당 친구라면 뭐든 같이 해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이며 “너도 한 마리 사, 같이 한강공원 가서 개 데리고 산책하자.” 라며 나를 유혹했다. 


나는 검은 털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슈나우저 품종의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5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샀는데 내가 받는 월급의 3분의 1이었다. 거금을 쓰는 일이니 망설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돈을 써서라도 얻고 싶었던 것이 분명했던 것 같다. 그 강아지를 통해 얻고 싶었던 인정의 시선은 상상할 수 있었지만, 내게 온 강아지 자체는 무엇도 나의 심상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함에도 강아지는 무척 귀여웠고 품종견에 대한 이해조차 없던 내게도 왠지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을 손에 넣었다는 뿌듯함이 더해졌다. 

토토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토토는 내가 책상다리하고 앉아있으면 그 위에 올라와 연신 잠만 잤다. 윤기 나는 검은 털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맥없이 잠만 자는 모습은 대책 없이 무방비했고 연약했다. 콧잔등을 쓸어주며 토토와 만들어갈 앞으로의 행복한 시간들을 상상하는 동안에도 그는 아랑곳 안 하고 잤다. 아직은 어려서 무엇 하나 같이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시간은 금방 흐를 것이고, 머지않아 우리는 TV광고처럼 신나게 한강공원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여느 날처럼 내 다리에서 잠자던 토토가 갑자기 먹은 것을 토해냈다. 이어서 설사를 했고 그대로 널브러졌다. 개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도 토하고 설사까지 하는 모습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친구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향했다. 토토는 바로 입원 절차를 밟았고, 파보바이러스 감염 판정을 받았다. 너무 어려서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숨이 막혔다. 토토는 일주일 동안 입원했고 입과 코로 토해낸 흔적만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씁쓸함 그 이상이었다. 초라한 자신을 가리고자 덮어쓴 가리개는 더할 나위 없이 그 자체로 소중한 생명이었음을 죽음 이후에 깨달았다. 나와 한강공원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낳아 준 엄마 곁에 있었어야 했고, 자신의 고통 앞에 낯선 병원과 의사를 들이밀기보다 자기가 아프다고 표현하는 그 모든 몸짓과 말들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었어야 했다. 수의사가 장례 절차를 묻을 때조차 아는 것이 없어 업체에서 해준다는 대로 ‘처리’를 맡겼다. 돈 오만 원에 모든 번거로움이 털렸다. 

돈이 다는 아니지만 돈을 못 버는 사람에 대한 평가절하는 늘 나를 괴롭혔고, 그런 세상에 그래도 언젠가는 세상의 뜻에 반하는 것이 잘 못이 아님을 보일 거라고 오기를 부리던 내가, 한편으로는 세상에 맞서는 것이 두려웠고 열등하다는 평가에 무너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그렇게 맞서기와 무너지기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알량한 자존심을 지켜보겠다고 토토로 나를 포장했다. 그 대가는 너무 가혹했다. 세상 사람들은 나처럼 고민도 안 하고 사는데, 이런 고민 자체가 주제넘은 일이라는 듯 짓밟힌 기분이었다. 토토의 마지막까지 돈으로 해결하고 나니까 정말 나는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느낌이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뒷산을 바라보며 데리고 와서 저기 묻어줄 걸 하는 후회를 했다. 데리고 왔으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토토, 무지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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