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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김도연 화가-성보영보 성화》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성모영보 성화


김도연 화가 ‘기도로 시작하는 그림’

박성진 문화평론가



<기도로 시작하는 그림 --성모영보의 참된 초점>


김도연 화가의 성모영보는

어떤 사건보다 먼저 기도로 열린다.

그의 화면은 천사가 등장하기 이전,

빛이 비치기 이전,

마리아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태어난

‘내면의 기도’에서 시작된다.

이 그림은

“하느님의 말씀이 먼저 울린 순간”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머물 수 있도록

마리아가 마음을 낮추고 숨을 고르는 바로 그 기도를 포착한 작품이다.

그래서 김도연의 성모영보는

‘기도가 있기에 그림이 시작된다’는

아주 본질적 신학을 시각화하는 성화이다.


<마리아의 고요 --기도의 첫 떨림>


그의 화면에서 마리아는

어떤 화려한 표정도 없다.

눈빛은 깊고, 손은 성물을 잡은 채 벌려져 있으며,

입술은 아주 미세하게

‘주님, 오늘도 저를 이끄소서…’

하는 기도의 숨결에 머물러 있다.

이 침묵의 자세는

막연한 순종이 아니라

“기도하는 인간의 내면적 결심”이다.

천사가 오기 전,

그녀는 이미 하느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기도의 숨결 위로

천사는 도착한다.


<김도연의 성화는 ‘기도의 방’을 그린다>


보통 성모영보 성화는

거대한 천상 빛과 천사의 제스처를 강조한다.

그러나 김도연은 먼저 마리아를 그린다.

성스러운 장식이 아니라

가난하고 단정한 질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앉아있는 의자는 천사가 마리아를 호위하고 있으며 성좌의 의자에 앉아있다.

마리아의 전 삶이 쌓인 자리이며,

기도가 가장 깊어지는 장소이다.

그림 전체는

“기도가 깃들 수 있는 자리를 먼저 마련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화면은 조용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그 고요 속에서

빛은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천사의 등장-- 기도에 응답하는 ‘찾아옴’>


김도연의 천사는

오만하거나 위압적이지 않다.

그는 마리아의 기도에 응답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천사는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고요에 스며들듯 나타난다.

빛도 폭발하는 기적이 아니라,

기도의 숨결을 따라 피어오르는 듯한 여린 밝음이다.

그는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해 온 사자가 아니라,

먼저 마리아의 영혼 깊이를 확인하는 동행자와 같다.

이것이 김도연 성화의 놀라운 영성적 균형이다.


<빛의 방향-- 위에서 아래가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김도연의 성모영보는

빛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의 빛은

마리아의 마음 안에서 먼저 태어나

그녀의 외곽으로 번져나간다.

이것은 ‘계시의 가장 순수한 구조’를 보여준다.

말씀이 먼저 그녀의 내면에 머무르고,

그다음에 빛이 세계로 확장된다.

김도연의 성화는

신비가 외부에서 강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기도와 준비 속에서

서서히 ‘모양을 갖추는 신비’의 과정의 작업이다.


<색채-- 기도처럼 조용한 빛의 선택>


김도연의 색채는

침묵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색들로 이루어진다.


*지나치게 밝지 않은 황금빛

*땅의 온기를 닮은 짙은 쑥색

*기도의 숨결처럼 옷은 은은한 푸른빛

*그 위에 얹힌 아주 희미한 흰빛


이 색들은

주목을 끌기 위한 장식이 아니다.

마리아의 기도가 담아내는

내면의 온도와 결을 시각화한 표현이다.


<손의 기도-- 손이 말하고, 손이 받든다>


성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손’이다.

김도연의 마리아는

자신의 몸 가까이에서 손에 성물을 잡은 채

자연스러운 형태를 만든다.

그 손의 모양은

세상을 향한 약속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내적 고백이다.

반면 천사의 손은

그 기도를 억누르지 않고

밑에서 살짝 받쳐주는 동작이다.

마치 “네 기도는 이미 들렸노라” 하는

하느님의 온화한 인사처럼.

김도연은

기도의 신학을 ‘손’으로 설명한다.


<화면의 공기-- 기도의 호흡이 머무는 자리>


그의 성모영보 성화에서는

공기가 흔들린다.

하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에 흔들린다.

마리아는 그날도

평소처럼 기도를 드렸다.

그 조용한 습관의 공기 속에서

빛이 머물고, 천사가 들어온다.

이 공기의 떨림이야말로

성모영보의 본질이다.

기도 없이는

그 어떤 신비도 시작되지 않는다.


<한국적 영성-- ‘하느님은 조용한 곳에서 일하신다’>


김도연의 그림에는

한국적 영성이 깔려 있다.


*소란보다 고요를 택하는 전통

*말보다 마음의 결에 귀 기울이는 태도

*장식보다 여백에 숨을 두는 감각

*음성보다 침묵에서 소리를 듣는 신학


이것은 동양의 여백 정신이면서

가톨릭의 가장 고전적 영성인

‘관상(觀想) 기도’의 정신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그래서 그의 성모영보는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특별한 ‘영성의 그림’이다.


<성모영보의 핵심 재해석--- 사건이 아니라 기도의 완성


김도연 화가는

성모영보를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사건은 결코 시작이 아니다.

그는 성모영보를

기도의 완성으로 본다.

마리아는 갑자기 선택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 기도의 시간들이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로 이어졌고

그 준비가 완성된 순간

천사는 찾아온 것이다.

김도연의 성화는 그 진실을

침묵으로, 색채로, 구도 전체로 전달한다.


< “기도로 시작한 성화는, 결국 우리 마음을 여는 성화다”>


김도연 화가의 성모영보는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가르친다.

기적은 기도 위에서만 실현된다.

하늘의 빛이 먼저가 아니라,

기도하는 인간의 내면이 먼저이다.

그래서 이 성화는

종교적 장면을 묘사하는 그림이 아니다.

‘기도하는 인간을 위한 거울’이다.

마리아처럼

고요한 <성좌의 마리아 방> 마음의 방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천사는 찾아온다.

김도연 화가는 그 단순한 진리를

가장 섬세하고도 가장 정확하게

화폭 위에서 완성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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