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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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해국(海菊)의 뿌리 아래, 독도(獨島)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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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시인
1
태하리 절벽은 먼저 바람을 받아 적신다
바람은 수백 년간의 기도를 품은 채
바다의 비늘을 뒤집으며 절벽을 흔든다
그 위에서 해국 한 송이가
먼 연대기의 첫 장을 펼치듯
청보랏빛으로 깃발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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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국은 뿌리를 바위틈 깊숙이 묻는다
그 뿌리는 바람보다 오래,
파도보다 깊게 내려가
돌의 숨결을 배우고
절벽의 침묵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그 작은 꽃에
이별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사실은 아니다
해국이 품은 건 떠남이 아니라
돌아오지 못한 자들을 위한
기다림의 형상이다
바다에 젖은 손등 같은 기다림
밤마다 바람이 쓰다듬고 가는 기다림
3
그 기다림의 끝에
울릉도라는 기울어진 산이 서 있다
아득한 파도 틈에서 불쑥 솟아
스스로 하나의 세계가 된 섬
이곳에서 배를 타고
다시 바다의 깊은 허리를 가르면
독도를 향한 길이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늘 험하다
파도는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으며
독도는 쉽게 땅을 내어주지 않는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어려운 여정, 그러나
반드시 가야 하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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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시간, 혹은 더 먼 여정
육지를 떠난 몸은 흔들리고
속이 뒤집혀도
사람들은 기어이 그 길을 간다
왜냐하면 독도에 닿는다는 것은
단지 도착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원점에 한 번 더
불을 밝히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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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배가 천천히 속도를 늦추는 순간
바람이 먼저 바뀐다
동도의 검푸른 절벽이
수평선에서 뜨듯 일어나면
여행객들의 숨이 한꺼번에 멎는다
다들 말없이 선착장 난간을 잡는다
스무 분, 겨우 스무 분
허락된 시간 안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바람을 들이마시며
돌의 향기를 가슴에 옮겨 담는다
그러나 진짜 독도는
발아래 콘크리트가 아니라
발아래 들리지 않는
그 침묵의 울림이다
그 울림을 품기 위해
사람들은 여기에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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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울림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해국은 알고 있다
바람이 부는 자리마다
꽃은 잎을 떨고
파도가 치는 자리마다
뿌리는 더 깊이 내려간다
독도 또한 그러했다
수백 년의 바람이 지나갔으나
물러서지 않았고
수많은 파도가 들이쳤으나
제 이름을 놓지 않았다
한 나라의 동쪽 끝은
이렇게 피와 물과 바람 사이에서
수없이 새겨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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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가 독도를 부를 때
우리는 사실
해국의 꽃잎을 떠올리는 것이다
작지만, 꺾이지 않고
청보랏빛 하나로
자신의 세계를 지켜낸 존재
우리가 울릉도의 절벽을 바라볼 때
우리는 사실
돌의 힘을 배우는 것이다
몸을 언어 삼아
한 시대의 버팀목이 된 땅
우리가 동해를 건널 때
우리는 사실
자신의 마음 어느 편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을
다시 한번 되묻는 것이다
너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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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해국은 또 바람 속에서 흔들린다
그러나 쓰러지지 않는다
그 흔들림이 곧 생의 리듬이기 때문이다
독도 또한 또 파도를 맞는다
그러나 부서지지 않는다
그 부서짐 너머에서
섬은 더욱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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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리도
해국의 뿌리처럼 살자
절벽 끝에서도 흔들리되
뽑히지 않는 생명으로
독도의 바위처럼 서자
바람이 아무리 강해도
자기 이름을 버리지 않는 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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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끝에서 시작된 이 서사는
사실 한 사람의 생애와 닮아 있다
바람에 흔들려도
자기 존재의 뿌리를
매일 새로 묻어야 하는 삶
기다림과 돌아옴 사이에서
여전히 서 있어야 하는 마음
그리고 마침내
우리도 알게 된다
하나의 꽃과
하나의 섬이
왜 이토록 오래
사람들의 눈물과 기도를
끌어왔는지
해국이 바라보는 그 방향
바로 그 방향으로
우리의 마음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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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시인의 이 작품은 자연을 묘사한 시가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품어온 시간과 인간이 품어온 기억을 서로 비춰 보게 만드는 거대한 사유의 장이다. 꽃과 섬을 동시에 바라보게 하는 이 시의 구조는 단순한 병치가 아니라, 한 존재의 근원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는 문학적 렌즈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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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국은 이 시에서 작은 꽃이 아니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자리를 지키는 ‘존재의 윤리’이다. ‘바람보다 오래, 파도보다 깊게’라는 표현은 식물의 생태 묘사가 아니라, 치열한 생의 의지를 말하는 철학적 언어로 읽힌다. 해국의 뿌리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정신의 근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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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는 또 다른 층위에서 등장한다. 바다에서 우뚝 솟은 섬은 외딴 존재가 아니라, 자기 세계를 스스로 구축한 하나의 정신 공간이다. 기울어진 산이라는 표현은 삶의 경사와 고독의 경사를 동시에 말한다. 이 시에서 울릉도는 배경이 아니라 생의 무게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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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로 등장한다. 도착하는 순간이 목적지가 아니라 마음의 원점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라는 진술은, 독도를 물리적 공간에서 정신적 공간으로 끌어올린다. 독도에 이르는 불편함조차 시인의 손에서는 기억의 증거가 된다.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이기에, 더욱 내면 깊이 각인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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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전체에서 ‘바람, 파도, 뿌리, 돌, 침묵, 이름, 의 모티프가 반복되며, 자연과 역사가 하나의 구조로 맞물린다. 독도는 파도와 바람에 깎였지만, 이름을 잃지 않았다. 해국은 흔들리지만 뿌리를 놓지 않는다. 두 존재는 서로를 비춘다. 이 대구 구조는 작품의 상징체계를 견고하게 만들며, 시인의 세계관을 통째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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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열째 장에서 시는 자연의 대서사를 인간의 생애로 환원한다. 여기서 시의 결론은 더 이상 자연의 이야기나 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기 이름을 어떻게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해국의 뿌리와 독도의 바위는 인간의 마음에 비쳐, 자기 존재를 다시 묻게 만드는 영혼의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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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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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국이 서 있는 자리는 바람이 가장 먼저 닿는 자리다.
그 자리는 생이 시작되는 자리이자, 생이 시험받는 자리이며, 생이 자신의 근원을 확인해야 하는 자리이다. 바람은 해국을 흔들지만, 해국은 그 흔들림 속에서 오히려 자신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더 깊이 배워간다. 바람이 강할수록 뿌리는 더 아래로, 더 고요한 곳으로 내려간다. 자연은 말없이 이 원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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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또한 그러하다. 바람과 파도를 가장 먼저 맞는 곳이기에, 독도는 나라의 끝이 아니라 나라의 가장 깊은 내면이다. 외딴섬이 아니라 가장 먼저 깨어 있는 감각이며,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경계이자 가장 오래 견디는 중심이다. 독도가 그 자리를 지켜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민족의 시간과 의지가 증명된다. 그 강인함은 소리 없는 교육이며, 후대에게 남겨진 가장 묵직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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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국과 독도를 함께 바라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작은 것이 큰 것을 지키고, 변두리가 중심을 지탱하며, 고독한 자리가 공동체 전체의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작은 꽃 한 송이의 뿌리와 작은 섬 하나의 바위가 무너질 때 세계는 조용히 균열을 일으킨다. 반대로 그 작은 것이 견딜 때 세계는 조용히 중심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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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풍경을 그려냈기 때문이 아니다.
시인은 풍경을 통해 존재의 원리를 밝혔기 때문이다.
흔들리되 뽑히지 말 것.
작지만 지울 수 없을 것.
고독하나 중심을 놓지 않을 것.
이 세 문장은 해국에도, 독도에도, 인간에게도 동시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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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도 마찬가지이다.
바람은 피할 수 없고,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다면,
그 흔들림 속에서도 자기 이름을 잃지 않는다면,
인간은 결국 자기만의 독도를 품고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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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시인의 이 작품은 해국과 독도라는 두 존재를 통해
인간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조용히 일러준다.
말로 가르치지 않고, 자연의 모습을 빌려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문학적 깊이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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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시를 읽는 일은
독도를 바라보는 일이자,
해국 앞에 서는 일이자,
결국 자기 마음의 내부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그 길 끝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흔들려도 괜찮다.
그러나 뿌리만은 지켜야 한다는 것을. 해국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