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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박두익 시인~빗소리》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빗소리〉

박두익 시인


동네 헬스장 처마 위를

주룩주룩 때리는

빗소리


농촌 농민들의

모내기 일손을 잠시 쉬게 하는

빗줄기


도시의 누적된 미세먼지를

화끈하게 세척해 주는

소나기


이 세상천지를

강과 바다로 공중으로

끊임없이 순환시키는 생태계


시간이 지나자 더 세차게 내리 때리는 빗줄기

아련히 떠오르는 모습

나는 지금 그대의 우산이 되고 싶다


___________


박성진 문화평론


“빗소리에서 생명의 윤리를 듣다”


〈빗소리〉를 읽고 있으면 단순히 “비가 내리는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비가 지구 생명을 지탱하고, 인간의 일상을 도닥이듯 어루만지는 과정이 보인다.

이 시는 자연 현상을 묘사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순환, 치유, 배려라는 철학적 어조가 깔려 있다.


짧은 행과 쉬운 단어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그 안에 담아낸 사유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그것이 이 작품의 설득력이다.


첫 연--일상의 풍경이 시의 출발점


“동네 헬스장 처마 위를 / 주룩주룩 때리는 빗소리”


이 시작이 좋다.

왜냐하면 너무 멀거나 낯선 풍경이 아니라

누구나 눈앞에서 본 장면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의 순간에서 시를 끌어올린 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에는 약간의 정적이 깃든다.

비는 작게 속삭이듯 떨어지지만,

그 소리는 일상의 바쁨 속에서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하는 휴식 음표가 된다.

비는 소리가 아니라 리듬이며,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는 자연의 브레이크다.


농촌의 고단함을 쉬게 하는 자연의 배려


“농촌 농민들의 / 모내기 일손을 잠시 쉬게 하는 / 빗줄기”


이 장면은 단순 풍경 표현이 아니다.

이것은 생명노동의 세계다.

모내기는 땅과 인간의 대화이고,

비는 그 대화 사이에서 숨을 쉬게 하는 쉼표다.

비가 내리는 동안

농민들은 허리를 펴고 잠시 쉬고,

자연도 함께 숨을 고른다.

여기서 비는 굴레가 아니라 동행자로 등장한다.

“우리 편”이다.

인간과 자연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

비를 통해 다시 연결되는 순간이다.


도시를 씻어내는 비-- 정화의 시학


“도시의 누적된 미세먼지를 / 화끈하게 세척해 주는 / 소나기”


이 부분은 현대 문명 비판이 은근하게 들어있다.

‘미세먼지’라는 단어가 등장한 순간

시는 일상에서 현실로 내려선다.

그리고 비는 그 현실을 덮지 않고

씻어낸다.

여기서 ‘세척’은 단순 청소가 아니다.

생명 회복의 행위다.

비는 도시의 더러움을 꾸짖지 않는다.

하지만 그 더러움을 감싸 안고

말없이 제거한다.

이것은 자연의 윤리적 행동이다.

비는 강하고 거칠 수도 있지만

그 목적은 정화다.


생태철학의 장면 --순환의 영성


“이 세상천지를 / 강과 바다로 공중으로 / 끊임없이 순환시키는 생태계”

여기서 시는 존재론적 스케일로 확장된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비는 단순히 내려오는 현상이 아니다.

생명의 도식이자 순환 체계의 에너지가 된다.

땅과 바다, 공기와 구름,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거대한 순환 생태계.

이것은 생명과 연대가 이루는 우주의 조직도다.

비는 분쟁과 경쟁의 논리가 아니라

공존과 유지의 논리로 세상을 움직인다.


시인은 이 단순한 자연 현상에서

우리가 너무 쉽게 잊는 사실,

“모든 생명은 서로를 살린다”는 진리를 끌어올린다.


마지막 연--- 사랑의 윤리로 귀결


“나는 지금 그대의 우산이 되고 싶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로맨틱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시 전체가 말해온 순환과 보호의 철학이

이 마지막 한 줄에서

인간적 사랑의 윤리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이 고백은 감정 표현만이 아니라

“비가 나를 보호하듯,

나도 그대를 보호하고 싶다”는

윤리적 결심이다.

자연의 원리가 인간관계의 원리로 확장되는 순간,

그 시는 단지 풍경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철학으로 전환된다.


총평 — 평범함 속에서 발견한 경이


〈빗소리〉는 크고 화려한 시가 아니다.

그러나 작고 담백한 시 안에

*생태철학


*존재의 순환


*배려의 윤리


*사랑의 고백


이 네 가지가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이 시는

“말을 많이 하는 시”가 아니라

“진실을 정확히 말하는 시”다.

시어는 소박하지만,

시인의 눈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좋은 시가 가진 힘”이다.

평범한 비를 통해

우리는 생명의 의미를 다시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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