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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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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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 이인애 시인
오리야, 오리야!
시궁창 물에 빠져 허우적 대는
하나같이 그 나물에 그 밥
속살까지 오염된 탐관오리야
섬기는 머슴이 되겠노라
선거철에만 반짝 가면을 쓴
위하는 척, 열심인 척, 잘하는 척
척 척 척 삼척동자여
민생이야 굶든지 말든지
회전의자에 앉은 뒤엔
자기 배 불리기에만 급급한
까마귀고기 드신 도적님들아
구두에서 고무신으로 가고 있는
하루 달리 퇴보하는 나라살림
목구멍이 포도청인 국민은
내란몰이 보다 계란말이에 울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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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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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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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풍자의 정통 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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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에게〉는 풍자 시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시는 “오리야, 오리야!”라는 단순한 부름으로 시작하지만, 이는 곧 ‘어리석은 민심’이 아니라 ‘권력의 오염’을 겨냥한다. 다정 이인애 시인의 화법은 공격적이지만 저속하지 않고, 날카롭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풍자 시는 비판과 조롱 사이의 균형을 잃기 쉽지만, 이 작품은 명징한 현실 감각 속에서 언어적 품위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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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과 탐관오리의 상징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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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 물에 빠져 허우적”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더러움이 아니라 ‘정치적 도덕성의 파산’을 나타낸다. “그 나물에 그 밥”은 구조적 부패를 의미한다. ‘탐관오리’라는 전통적 용어를 통해 시는 과거와 현재의 부정을 연결한다. 이 시어 자체가 풍자이면서도 한국 정치사의 뿌리 깊은 질병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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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의 누적효과, 리듬의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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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척, 척”의 반복은 언어적 리듬 속에서 풍자의 힘을 배가한다. 이는 마치 사회적 가면을 벗겨버리는 도끼 같은 기능을 한다. 화자는 그들의 “척”을 들춰내며 얼굴의 분장을 벗겨내고, 진짜 민낯을 드러낸다. 풍자는 웃음이 아니라, 짙은 허탈과 분노가 깔린 웃음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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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가면의 비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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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에만 반짝 가면을 쓴”이라는 표현은 한국 정치의 주기적 쇼를 비판한다. 가면은 본래 얼굴의 일부처럼 보이지만, 벗겨지는 순간 그 사람의 본질이 드러난다. 시인은 그 진정성을 문제 삼는다. 백성을 섬긴다는 말은 구호가 되었고, 구호는 기만이 되었다는 현실의 통렬한 관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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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의 실종과 배불림의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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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이야 굶든지 말든지”는 냉소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한 비명’이다. 정치권력이 민생을 외면하는 순간, 시인은 냉정한 칼날로 그 허리를 자른다. “자기 배 불리기”는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정치의 퇴화, 국가 윤리의 붕괴를 상징한다. 풍자 시가 사회의 거울이라면, 이 시는 그 거울에 검은 얼룩을 비추는 방식으로 사회 교육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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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고기의 묘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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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고기 드신 도적님들아” 이 표현은 한국적 풍자에서 보기 드문 절묘한 이미지다. 까마귀는 탐욕과 죽음의 상징이다. “고기를 먹는다”는 표현은 악을 영양분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언어의 비유는 감정적 격분이 아니라, 사회학적 진단이다. 이 시의 깊이는 바로 이러한 상징적 압축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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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에서 고무신으로 가는 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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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에서 고무신으로”라는 변환은 단순한 물질적 퇴보가 아니라 국가 품격의 급락을 의미한다. 국민 삶의 질이 후퇴할 때 정치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시는 이를 조롱하지만, 그 조롱 뒤에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숨어 있다. 시인은 웃지 않는다. 울지도 않는다. 다만, 비판의 언어를 통해 시대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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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말이와 내 안몰이의 언어적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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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몰이 보다 계란말이”라는 구절은 시 전체의 백미다. 국민은 내란의 정치적 흉흉함보다 ‘계란말이’라는 밥상의 현실에 울고 웃는다. 이는 정치가 민생의 혀끝 아래로 밀려났음을 드러낸다. 민생의 진실은 정치가 아니라 부엌에서 나온다는 깊은 풍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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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결론과 사회적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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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에게〉는 풍자 시이지만 해학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비판의 종결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기록이다. 이 시는 정치인을 욕하는 시가 아니라, “정치적 양심을 깨우는 시”다. 풍자가 ‘비판의 종점’이라면, 이 시는 ‘희망의 시작점’이다. 시인의 사회적 역할은 비추고, 기록하고, 질문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역할을 이 풍자 시와 해학으로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