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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지은경 박사 제41회-국제펜문학상 시부문수상》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시인 문화평론가



〈지은경 박사 시집 〈수다〉 -말의 기원을 다시 연 시인의 내면 기록〉


박성진 문화평론


서두 — 상이 시인을 찾아간 드문 순간


국제펜문학상은 이름 자체가 이미 의미를 완성한다.

그러나 지은경 박사의 시집 〈수다〉가 이 상을 받은 순간,

문학적 무게 중심은 오히려 거꾸로 움직였다.

상이 작품을 빛낸 것이 아니라,

작품이 상의 품격을 끌어올렸다.

그런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것을 문학인은 누구나 안다.


〈수다〉는 “말”이라는 가장 가벼운 재료로

가장 무거운 질문들을 정면에서 건드린 시집이다.

가벼운 단어 하나를 들어 올려

존재론적 깊이로 끌어올리는 손길,

그것이 바로 문학이 가야 할 진정한 높이다.


수다라는 제목의 반전


보통 “수다”는 흩어진 말, 가벼운 말,

혹은 소음처럼 스쳐 지나가는 말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지은경 박사의 시 안에서

수다는 전혀 다른 의미로 뒤집힌다.

그는 말이 가볍다고 보지 않는다.

가벼운 말속에서 인간의 본심이 가장 먼저 새어 나온다고 보았다.

오히려 절제한 말보다

제어되지 않은 말이 인간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수다〉는 이 발견을 시적 구조로 정교하게 세워 올린 시집이다.

일상을 벗겨내는 시인의 손


지은경 박사의 시선은

일상의 표면을 바라보지 않는다.

아주 작은 말과 장면에서도

그 밑에 숨은 감정의 골격을 꺼내어

빛이 닿는 곳에 올려놓는다.

그는 흔한 장면을 낯설게 만든다.

그 낯섦은 기술이 아니라

대상을 깊이 들여다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 진지한 응시는

일상에 가려졌던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등불처럼 작동한다.


말의 속도와 감정의 속도가 다를 때


현대인의 말은 놀라울 만큼 빠르다.

그러나 감정의 속도는 그 말에 따라오지 못한다.

이 어긋남에서 상처도, 후회도, 성찰도 발생한다.

지은경 박사는 이 간극을 누구보다 정확히 보았다.

말이 앞서가면 감정은 늦게 따라오고,

그 늦은 감정이 남기는 후회가

때때로 우리의 성숙을 만들어낸다.


〈수다〉는 이러한 인간의 내면적 시간차를

섬세하게 잡아낸 시집이다.


말보다 무거운 침묵


〈수다〉는 말에 관한 시집 같지만,

사실은 침묵에 관한 시집이다.


말이 계속 흘러나올수록

오히려 더 울리는 것은 말 뒤의 정적이다.

말이 멎은 순간의 숨 가쁜 고요,

그 틈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난다.

지은경 박사는

말 뒤에 숨어 있는 침묵의 무게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끼고,

그 무게를 시 속에 담아내는 능력을 지녔다.


현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언어


그의 시는 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위로란 애초에 가벼운 말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상처를 진솔하게 바라보고

그 상처의 결을 천천히 어루만진다.

지은경 박사의 시는

상처를 ‘판단’ 하지 않고,

상처의 흐름을 따라가

그 흐름 끝에서 조용한 성찰의 빛을 건넨다.

그 빛은 뜨겁지 않다.

그러나 오래 남는다.

그 점에서 그의 시는

치유의 문학이면서도 윤리적 문학이다.


여성적 감성의 새로운 강도


〈수다〉는 여성의 내면을 다루지만

섬세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 안에는 투명한 강도가 있다.

그의 여성성은 유약함이 아니라

진짜를 말하려는 내적 용기에서 온다.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한 시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이것이 지은경 박사가

단순한 여성시인의 범주를 넘어서

‘사유하는 시인의 계보’로 들어선 이유이다.


언어학, 철학, 심리학이 스며든 시적 실험


〈수다〉는 언어의 표면만 다루지 않는다.

말의 음성, 말의 무게, 말의 관계,

말이 전달될 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반응까지 함께 꺼내어 놓는다.

그는 한 문장을 쓰더라도

그 문장이 인간의 감정 깊숙한 곳에서

어떤 진동을 일으키는지까지 계산해 놓은 듯 정교하다.

이런 다층적인 언어 구조는

그의 시를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사유의 문학으로 끌어올린다.


한국 현대시의 진로를 바꾼 작품


한국 현대시는 오랫동안

이미지 중심, 감정 중심의 흐름을 걸어왔다.

그러나 〈수다〉는 그 흐름을 확장시키는 작품이다.

말은 왜 존재하는가.

사람은 왜 말하며, 왜 때로는 말하지 못하는가.

말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연결하고,

어떻게 찢어놓는가.

〈수다〉는 이 근본적인 질문을

시적 감각과 학문적 깊이로 풀어냄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종결 — 수다는 더 이상 가벼운 단어가 아니다


지은경 박사의 〈수다〉는

“말”이라는 가장 흔한 도구로

가장 드문 깊이를 만든 시집이다.

가벼운 말의 소음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정확하게 읽어낸 이 시집은

말의 존재론, 침묵의 윤리, 감정의 구조를

새롭게 제시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기에 국제펜문학상의 선택은

문학사의 긴 맥락 속에서 보아도

지극히 자연스럽고 필연적이다.


〈수다〉는

말의 본질을 다시 묻고,

말의 경계를 확장하며,

말의 무게를 정직하게 드러낸 시집이다.


이제 ‘수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가벼운 말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숨결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 시적 언어가 되었다.


41회 국제펜문학상 시부문 수상의 영광은

시인이 받을 기회가 많지 않기에

다시 한번 경사스러운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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