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쇼코의 미소』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듯 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최은영,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2016)
읽다가 가장 슬퍼진 구절이자 공감하지 않는 구절이다.
나는 어린 시절 친구들이 많지 않다. 지금 연락하는 어린 시절 친구라고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 한명 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인연은 거의 없다싶이 하다. 현재 내 주위의 친구들은 대학 친구들, 첫 회사 동기들, 싱가폴에 와서 만나게 된 인연들이 대부분이다. 30년 가까이 된 내 인생을 반으로 쪼개봤을 때 첫 15년간의 인연 중 아직도 이어지는 의미있는 인연은 친구 한명과 가족이 다이다.
나는 영원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그와 동시에 그 순간의 진심 또한 믿는다.
내 친한 친구 중 하나는 나만큼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이 없고, 평생 좋은 친구로 남자고 말한다. 나는 그 친구가 그 말을 하는 순간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나에게도 소중한 친구이다. 하지만 미래의 어느 순간 우리 삶의 방향이 크게 달라진다면, 그 이후에도 변해가는 서로의 삶에 공감하며 지금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내 하나 남은 초등학교 친구는 아직도 가끔 만난다. 만나면 편하고 즐겁다. 그 친구는 한 도시에서 태어나서 대학도 그 근처 도시로, 직장도 태어난 도시에서 다니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이후로 같은 지역에서 5년 이상 살아본 적이 없다. 친구는 안정적인 공무원으로서 살아가고 있으며, 나는 내일 당장 한달 노티스를 받고 짤려도 이상하지 않은 싱가폴 사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는 취미생활을 공유하지도,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지도, 서로의 인생에 대해 공감해주기도 어렵다. 난 힘들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친구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직장에서의 일은 직장 동료나 비슷한 직종의 친구들에게, 취미생활을 하다가 생긴 일은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에게 터놓는다. 우리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고, 편하지만 거리감이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소중한 친구이고, 그 친구가 앞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요는 내가 평생 백퍼센트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어차피 없다는 것이다.
그건 어릴 때 만났던 아니던 상관없다. '내가 솔직할 수 있는가'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주제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직장에서의 일을 가장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직장동료나 같은 직종의 친구고, 전에 갔던 레스토랑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이 그 레스토랑에 갔던 친구이며, 같이 새로운 책을 사러 서점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책 취향이 비슷한 친구이다. 그리고 그들이라고 평생 그 주제에 공감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른 나라로 떠나게되면 내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뀔 것이며, 내 취미가 달라진다면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도 바뀔 것이다.
생의 어느 시점에서 사람들이 마음의 빗장을 닫을 것이라는 것을 난 아직 믿지 않는다. 아직 내가 그 시점이 올 때까지 살아보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냥 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단면적으로 판단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가족과 친구를 사랑하지만 그들이 완벽하게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줄 단 한사람이 될 수는 없다. 어차피 사랑이란 다름을 받아들이고 그마저 사랑하는 것이니까.
내가 믿는 것은 내 생에 거쳐가는 모든 이들이 각자 나의 한 부분을 이해하고 공감해줄 것이고, 그 모든 것이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