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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20 타이거 샤크 실패작으로 끝나버린 이유

by 한민 Mar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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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는 전투기 F-20 타이거샤크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한때 차세대 경전투기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빛을 보지 못한 이 전투기의 개발 과정과 몰락의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제트 전투기의 대세를 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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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소련과의 군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강력한 전투기 개발에 힘썼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F-86 세이버로 MiG-15와 맞섰고, 이를 통해 제트 전투기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미국은 센추리 시리즈 전투기(F-100부터 F-106까지)를 개발했지만, 지나치게 속도와 생산성에 집중한 나머지 기체 안정성이 부족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베트남전에서 활약한 F-4 팬텀입니다. 그러나 F-4는 고가의 전투기였기에 모든 동맹국에 공급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미국은 보다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우수한 전투기를 개발하기 위해 F-5 프리덤 파이터를 선보였습니다.


이 전투기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운용되었고, 미국과의 군사 협력에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F-20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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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당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군비 경쟁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동맹국에 판매할 수 있는 전투기 종류를 제한했습니다.


이에 따라 노스럽(Northrop)사는 기존의 F-5를 개량해 더욱 뛰어난 성능을 갖춘 전투기를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바로 F-20 타이거샤크입니다.


노스럽사는 기존 F-5의 단점을 보완하고, 성능을 대폭 향상시켜 F-16과도 경쟁할 수 있는 기체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원래 F-20은 미국 전투기 제식 번호 체계에 따라 F-19가 되어야 했지만, 노스럽은 새 시대를 여는 기체라는 의미에서 ‘20번대’ 첫 번째 전투기를 원했고, 결국 F-20이라는 번호를 부여받았습니다.


[F-20의 성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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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20은 F-5와 유사한 외형을 가졌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엔진이 기존의 쌍발(Twin-engine)에서 단발(Single-engine)로 변경되었다는 점입니다.


겉보기에는 추력이 줄어들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더욱 강력한 터보팬 엔진을 탑재하여 기존 F-5보다 3.4배나 높은 추력을 발휘했습니다.


터보팬 엔진은 터보제트 엔진에 비해 더 많은 공기를 흡입해 높은 출력을 내면서도 연료 효율성이 뛰어난 것이 특징입니다.


무장 또한 강화되어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었고, 기존 F-5보다 전투 성능이 60% 이상 향상되었습니다.


또한 F-15와 FA-18에 적용된 조종성 향상 시스템을 탑재했고, 기체 날개 크기를 증가시켜 기동성을 향상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무게 중심이 변하면서 비행 안정성이 다소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불운한 판매 전략과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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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럽은 F-20을 세계 각국에 판매하려 했지만, 이미 많은 국가가 F-5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기체를 구매하려는 움직임이 적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F-20을 판매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특히, 노스럽은 한국에 F-20을 홍보하기 위해 두 명의 에이전트를 고용했습니다. 한 명은 재미교포 사업가 ‘지미 신’이었으며, 다른 한 명은 88올림픽 유치에 기여한 박종규였습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1984년 10월, 수원 공군기지에서 F-20의 비행 시연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시연에서 F-20이 실속에 빠져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신뢰를 크게 잃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고 원인은 기체 결함이 아니라 조종사가 고중력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기절한 것이었지만, 한국 군 관계자들은 F-20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F-20은 여러 나라에 홍보되었지만, 1985년 파리 에어쇼를 앞두고 캐나다에서 또다시 추락 사고가 발생하면서 ‘과부 제조기’라는 오명을 얻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정부는 한국이 F-16을 도입할 수 있도록 승인하면서, 굳이 F-20을 구매할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은 피스브릿지 사업과 KFP 사업을 통해 F-16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F-20의 몰락과 남겨진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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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럽은 막대한 자금을 들여 F-20을 개발했지만, 결국 단 한 대도 판매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이후 노스럽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1994년 그루먼과 합병하여 현재의 노스럽 그루먼(Northrop Grumman)이 되었습니다.


한편, F-20의 실패는 다른 흥미로운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원래 F-20의 제식명이 F-19가 될 예정이었지만, 노스럽의 요청으로 F-20이 되었고, 이로 인해 미 공군의 스텔스 전투기가 F-19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로 인해 장난감 회사들이 F-19 모형을 출시하고, 심지어 소련 첩보원들까지 F-19의 존재를 의심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F-20의 실패를 본 한국은 오히려 록히드 마틴과 협력하여 자체적인 고등훈련기 개발에 나섰고, 그 결과물이 바로 T-50 골든이글입니다.


현재 T-50은 FA-50이라는 경공격기 모델로 발전해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되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이 F-20을 도입했다면, 록히드 마틴과 협력하는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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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20은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탓에 실패한 전투기입니다.


전투기의 성능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결국 시장성과 신뢰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결국, F-20의 실패는 한국 항공우주 산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T-50과 FA-50이 탄생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F-20이 망한 덕분에 한국이 미래 전투기 개발의 길을 걷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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