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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Jul 01. 2024

결혼 13년, 나 홀로 밤을 느끼다.

자유롭지 않은 자의 해방감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다시 올라왔다. 일을 더 열심히 해보고, 취미 생활을 해보고, 사람을 만나 보아도 한번 고개를 내민 우울감은 나를 점점 가라앉게 했고 의욕을 잃게 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티를 낼 수 없었다. 나의 우울과 염려가 가족들에게 옮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 아빠가 가장 큰 세상인 아이에게 늘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었기에 나약해질 겨를이 없었으나 그러기를 발버둥 칠 수록 늪에 발목을 잡힌 것만 같았다.


슬픔을 흘러내 버려야 치유가 되는 마음을 꽁꽁 닫아두고 나조차도 모른 척했더니 그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곪아오고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봤다. 지금의 내가 행복감을 느끼는 일을 찾기가 어려울 땐, 예전의 내가 어떤 것을 했을 때 행복했었는지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듣고 나니 한 가지가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차를 좋아해서 성인이 되고 나서는 조용히 드라이브하는 것을 좋아했다. 직장생활 시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면 한강 공원에서 차를 세우고 생각을 정리하곤 했고, 마음이 복잡할 땐 목적지 없이 차를 몰았다.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를 재운 뒤 남편에게 산책을 다녀온다고 말하고 동네를 걸었다. 별다른 것 없이 혼자 걷는 것만으로도 얽매였던 마음이 느슨해짐을 느꼈다. 어둠이 내려앉은 아스팔트 길에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단단함이 좋았고, 난시 때문에 번져 보이는 가로등 마저 아름다워 보였다. 늘 지나던 동네길이지만 처음 보는 간판들, 내부 인테리어와 메뉴를 살펴보며 걸을수록 해방감이 느껴졌다. 나의 세상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은 차키를 가지고 내려와 시동을 걸었다. 이전에 꿈 많고 자유로웠던 내가 아직 그대로다. 창문을 살짝 열어 차로 흘러들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운전석 창문을 통해 들어온 가볍고 차가운 바람이 나의 심란과 곪아버린 무거운 마음을 휘감아 꽉 쥐고 반대쪽 창문으로 나간다. 얹혀있는 듯 꽉 막혀있던 가슴 한가운데 명치가 편안해졌다. 별거 아닌 한 시간의 시간이 칠흑 같은 어둠에 잠식되어 가던 나를 깨운다.


살아 있었다. 엄마와 아내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인간 그대로의 나도 아직 살아 있었다. 가족과 집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은 내가 집 안에만 얽매어있지 않다는 자유로움을 주었다.


한껏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면 아침이 개운했다. 밤새 어떤 꿈인지도 모를 심연 속을 헤매지 않아도 됐고, 생각으로 뒤척이는 일도 없이 푹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하니 일상 속 모든 것이 사사롭고 행복하다.


자유로움을 바탕에 깔고 나니 내가 선택한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혼자 있는 오전 시간, 나의 부지런함으로 깨끗해지는 집안이 아름답다.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자 올라오는 흙냄새가 상쾌하다. 학교 다녀온 아이를 차에 태워 준비한 간식을 먹이고 학원으로 데려다주는 길에 듣는 아이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좋다. 사랑하는 아이를 학원에 들여보내놓고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카페에 들러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개운하고 향긋하다. 정신이 없을수록 하나씩 완성되어 가는 요리,  그리고 음식을 먹으며 웃는 가족들의 미소에 내가 하는 일들의 가치를 느낀다.


나의 감정은 나로부터 기인한다. 나의 우울함도, 외로움도 분노와 행복감도 모두 나의 감정이기에 극복하는 것도 나여야만 가능하다. 가족의 사랑과 관심이 구덩이 같은 우울의 늪에서 날 꺼내게 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겠으나 결국 나오겠다는 마음을 먹고 실행하는 것은 오로지 '나'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단지, 울고 싶을 땐 울고 말할 곳이 없을 땐 글로라도 적어 감정을 해소해야 우울과 불안에 삼켜지지 않는다. 한 곳에만 머물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고, 외로움의 저편에 있는 기쁨을 잊지 않는 것이 내가 가진 마음가짐의 최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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