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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사람 Oct 06. 2024

3인가족 11평 아파트 입주일기-3

(축) 강제 미니멀리스트 당첨

나의 본가는 예전부터 '발 디딜 곳 없는 집'으로 통했다. 학교와 가까운 곳에 살아 친구들을 자주 데리고 왔는데 올 때마다 친구들은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난감해했다. 나는 바닥의 물건들을 발로 슥슥 치우고 들어오라고 했다. 작지 않은 평수였음에도 다섯 식구의 짐이 넘쳤고, 가족 중에 그걸 정리하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한 번도 깔끔하게 정돈된 집에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았다. 우리 집이 특이할 정도로 짐이 넘쳐나고 정돈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내가 신혼살림을 차린 후였다.


신혼집에서 지내다 친정에 간 날 처음 제삼자의 시선으로 부모님의 집을 보게 된 것이다. 수납장마다 터질 듯한 짐, 바닥에 널려있는 옷가지, 자리가 없어 아무렇게나 나와 있는 물건, 언젠가 쓸 거라며 마구 쌓아둔 소비재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친정 집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짐에게 주인의 자리를 뺏기지 않겠다는 다짐도 잠시,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리 집에도 짐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우리는 전셋집을 정리하고 친정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최대한 불필요한 물건을 버렸음에도 이삿날 한가득 나온 잔짐을 보면서, 그리고 여전히 물건에게 주인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친정 집을 보면서 이번에야말로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11평에 세 명이 살려면 미니멀리스트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번이 미니멀리스트로 새로 시작할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좁은 집에 수납이 가능할 정도의 물건만 들이며 내 집의 진정한 주인이 될 기회!


키친핏 냉장고를 사서 적당량의 식재료만 사놓고 제때 소진하고, 옷을 세 통짜리 옷장에 들어갈 정도만 남겨서 오래오래 입을 것이다. 수납공간이 부족하니 필요한 양보다 많은 물건을 쟁여놓지 못할 것이고, 쑤셔 박아놓고 몇 개월 동안 열지 않을 정도의 여유 공간도 없을 것이다.


의지만으로 짐을 줄이지 못하던 나에게 이런 좋은 기회가 오다니! 이번 기회에, 아니 이번에는 정말로 미니멀리스트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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