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가 뭐 이리 많아
우리가 결혼식을 올린 2015년에는 신혼 가전이 지금보다 심플했다. 냉장고, 세탁기, TV, 정수기, 에어컨 정도였던 거로 기억한다. 지금보다 관심이 없어서 내가 몰랐던 것일 수도 있지만 종류도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9년이 지난 지금은 소위 말하는 ‘필수템’이 너무 많다. 3대 이모님이라고 불리던 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에 음식물 처리기, 의류관리기, 환풍기 등 삶의 질을 바꿔준다는 신문물이 쏟아져 나온다. 최근에 결혼한 친구들도 거의 다 사용하고 있고 만족도 또한 높은 걸 보면 살림은 역시 아이템 빨이다. 우리도 건조기와 식기세척기를 차례로 들이면서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경험을 해봤기에 새로 나온 필수템들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많은 신혼부부들이 로봇청소기를 가장 잘 산 가전으로 꼽는다. 알아서 집안 곳곳의 먼지를 치우고 제자리에 돌아가 걸레까지 빨아 놓는다니! 이건 솔직히 사야 할 것 같다.
두 번째로 많이 꼽히는 베스트 아이템은 음식물 처리기이다. 겉모습은 곰이지만 음식물 쓰레기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하는 남편 덕분에 음식물 쓰레기 담당은 늘 나였다. 음식물 처리기를 사면 드디어 남편 담당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으니 이것도 사야겠다.
세 번째는 화장실을 뽀송하게 말려 준다는 환풍기다. 앞서 말했듯이 비위가 매우 약한 남편은 화장실 청소도 하지 못한다. 결혼할 때 화장실 청소는 자기가 다 한다더니 여태까지 두 번 정도 한 것 같다. 그것도 내내 웩웩거리면서. 자연스레 화장실 청소도 내가 하는데 환풍기를 달면 물때 자체가 덜 생기지 않을까 싶어 이건 벌써 구매했다. 게다가 몸과 머리를 말리는 드라이어 기능까지 있다고 하니 아이 씻기고 나서도 얼마나 편할지 생각하면 잘 한 소비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은 의류 관리기다. 앞의 세 가지에 비해 덩치가 커서 고민되지만 옷의 생활 구김을 펴주는 기능과 밖에서 묻혀 온 먼지와 담배 연기를 매일 털어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거실 구석에 덩그러니 프리스탠딩으로라도 들이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가전에서만도 갖고 싶은 게 마구 추가되는데 입주박람회에서는 신규 입주 시 필수로 해야 할 것들을 또 쏟아 낸다. 사전점검, 입주청소, 새집증후군 관리, 줄눈, 중문, 실링팬, 탄성코트, 나노코팅 등등.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하나하나 알아보고 진짜 필요한 것만 추려보았다.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다가도 조금만 알아보면 할 필요가 없거나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미 결혼식과 육아를 하면서 각종 업체에서 꼭 해야 할 것처럼 하는 말을 걸러 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판단할 수 있었다. 당장 안 해서 큰일 나는 것은 별로 없다. 어차피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춰놓고 입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진짜 우리에게 필수인 것들부터 찬찬히 채워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솔직히 오늘 쓴 가전 4총사는 진짜 필수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