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같은 슈퍼히어로뿐 아니라 독수리 오형제 같은 새들까지 나서서 악당을 물리치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여전히 수많은 악당들이 남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선과 악은 사람 단위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그 비율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한 사람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
이탈리아의 생화학자이자 작가인 프리모 레비(Primo Levi)는 1947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은 참혹한 경험을 묶어 《이것이 인간인가》(Se questo è un uomo)라는 회고록을 냈다.
유대인이었던 프리모 레비는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대우, 굶주림, 강제노동, 폭력 속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인간성과 윤리가 극한의 상황에서 어떻게 시험받는지를 증언하고자 했다.
프리모 레비는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던 중 한 독일군 장교가 가족과 전화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독일군 장교는 아내와 다정하게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모습을 본 레비는 한 인간이 잔혹한 가해자의 모습과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다룬 저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에서 아이히만을 비롯한 나치 전범들이 악행을 저지른 이유가 악을 추구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서 체제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렌트의 주장에 동의할 생각은 없다. 나치들이 유대인들에 대해 평범한 인간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강렬한 미움을 품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리모 레비의 발견처럼 그런 극악한 인간들의 본성에도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다만 선함의 공존이 악함에 대한 면책이나 동정심을 제공해 줄 명분이 될 수는 없다.
그럼 우리는 어떤가? 악하기만 하거나 선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그렇기에 악하다는 이유로 남을 미워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우리 스스로가 선하기도 하지만 조금씩은 악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것은 용서와 관용이다. 악당을 쳐부수기만 한다면 세상은 텅 비게 된다. 단지 그 용서와 관용이 도덕적인 우월감이나 교만에서 출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같은 죄인으로서 서로 불쌍히 여김의 발로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