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하민 Jul 25. 2024

나치의 파시즘과 탈개인화(deindividuation)

Operation Deindividuation. ‘나'가 아닌 ‘나치’

Fascism of Nazis and deindividuation

Operation Deindividuation.


서론 - Introduction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다양한 문화들이 공존하고 그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입니다.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받기 시작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은 이미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00년도 채 되지 않은 과거에는 그 가치가 한없이 바닥을 찍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2차 세계대전’입니다. 이 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아픔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특히나 무려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을 학살한 제노사이드, 이른바 ‘홀로코스트’는 세계 현대사의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았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가 ‘학살'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꾸준히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나치의 홀로코스트에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그 학살에 동원되었던 인원은 ‘독일군' 뿐만 아니라 독일의 시민들까지 포함한 ‘독일'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한 국가가 강한 결속력을 가진 하나의 집단이 되어 그 집단에 매료된 개인이 그 상태로 자기 자신을 잃어갔는지를 심리학적 이론인 탈개인화(deindividuation)를 중심으로 다뤄보려 합니다.

파시즘에 대하여 - Understanding Fascism

  우선 나치 독일의 정치 체제인 파시즘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파시즘은 굉장히 독특한 정치 체제입니다. 아직까지 파시즘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된 바 없습니다. 파시즘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군국주의를 기반으로 하며, 권위주의적인 방법을 통해 민족을 결속한 일종의 전체주의를 표방합니다. 파시즘은 하나의 정치체제 이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치체제인 공산⋅사회주의나 자유⋅민주주의처럼 흔히 볼 수 있는 체제는 아닙니다. 그것을 실제로 이끌어낸 사례는 역사상 단 둘 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이탈리아 제국의 무솔리니였으며 나머지 하나는 나치 독일의 히틀러입니다. 파시즘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며, 자유⋅민주주의를 반대합니다. 그저 한 명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온 국가가 통치되는 것이 파시즘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파시즘과 독재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바로 국민들의 지지일 것입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대중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얻었습니다.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를 찬양했습니다. 그들의 인사말은 어느새 히틀러 만세(Heil Hitler)가 되어 있었습니다. 국민들이 히틀러에 매료되었던 이유는 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패닉상태에 빠져버린 독일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했던 히틀러의 민족주의적인 사상에 있었습니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유가 다름 아닌 유대인들에게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공통의 적을 가진 집단은 그 어느 집단보다 빠르게 결속할 것입니다. 이는 사회 정체성 이론에 따라 내집단을 형성한 것과 같습니다. 집단의 차별성에 대한 위협은 더 많은 내집단 편향으로 이어집니다. 집단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구성원들은 위협과 좌절감을 느낍니다. 이는 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독일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집단은 모든 문제를 탓할 희생양을 찾습니다. 희생양은 집단에게 심리적으로 큰 도움이 됩니다. 희생양에 대항하여 함께 노력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약속을 하고, 집단 구성원들이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유대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홀로코스트 당시 나치는 '내집단'이었고 유대인은 '외집단'이었습니다. 희생양을 통해 집단 구성원들의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나치 독일의 프로파간다는 국민들의 의식을 점점 흐려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어느 매체에서든지 흔히 유대인을 차별하고 폄하하는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나치 정권은 신문사를 사들이고 포스터를 제작하는 등의 여러 프로파간다를 시행했습니다. 그렇게 독일은 결국 하나의 공동체, 단순한 국가를 뛰어넘어 민족을 중심으로 한 ‘집단’이 되었습니다. 

탈개인화란? - The Concept of Deindividuation

  이쯤에서 탈개인화가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탈개인화는 특정 집단에 속한 개인에게 익명성이 보장되거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즉, 개인의 자아인식이 저하되고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못하며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지 않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탈개인화 상태에 있는 개인은 어떤 행동을 보이게 될까요? 분명히 그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개인으로 머무를 때와는 사뭇 다른 행동을 보일 것입니다. 특정 집단에 속해있는 개인이 개인의 가치관과 자아를 자신이 속한 집단의 규범 혹은 규율로 삼고, 개인이 없는, 집단만이 남아있는 상태를 탈개인화 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치와 독일사회의 탈개인화 - Deindividuation of Nazis and German society

  나치 독일은 정확히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독일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지지했던 나치는 결국 끔찍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닌 ‘독일 나치'에 존재했던 독일 국민들은 유대인들에게 악랄한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릅니다. 식당에서는 유대인을 받지 않고, 길을 가던 유대인을 무차별 폭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숨어 지내는 유대인을 군인들에게 넘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잡혀가면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죠. 이러한 일은 결코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 자신의 자아인식이 흐릿해진 탈개인화 현상의 작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탈개인화 현상은 집단의 크기에 따라 더욱 강해집니다. 나치 독일은 무려 한 국가의 집단이었습니다. 이만큼 큰 집단에서는 탈개인화 현상이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집단의 크기가 클수록 책임이 분산되고(diffusion of responsibility) 익명성이 더욱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에게도 나타난 탈개인화 현상이 유대인을 직접 살해했던 군인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일어났는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독일군인들은 유대인을 죽이는 것을 자신의 고귀한 임무로 여기며 그들의 학살을 정당화하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일부 군인들은 학살을 자행한 뒤 배가 고파 유대인들의 시체 위에 걸터앉아 의연하게 빵에 버터를 발라서 먹는 모습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였던 독인군들은 모두가 사이코패스이거나 정신 이상자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탈개인화의 무서운 점입니다. 아무리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사이코패스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 탈개인화인 것입니다. 히틀러의 충실한 일꾼이자 홀로코스트의 주동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은 전쟁이 끝나고 전범 재판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의 정신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진단을 내렸던 정신과 의사 6명의 판명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아이히만의 정신상태를 정상이라고 판명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바람직한 상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심지어 한 의사는 자신의 정신상태보다 건강하다고까지 하였습니다.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를 두고 악은 다른 곳에 있지 않으며 악은 본질적으로 평범성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며 자신은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의사들에 소견으로 지극히 정상이며 바람직한 정신상태를 가진 아이히만은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것을 주도했습니다. 앞선 문장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통념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그것을 한 번도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무지함과 단순함에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히만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한 번도 자신의 행위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나치 독일사회가 공유하던 믿음에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바로 “유대인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아이히만도 탈개인화 현상으로 인해 자신의 자아인식을 마비시키고 오로지 히틀러와 그의 당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것입니다.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자신은 단지 공무원으로서 상명하복을 따른 것뿐이라면서 말이죠. 

결론 - Conclusion 

  탈개인화는 집단을 전제로 합니다. 집단에 속해있는 개인이 자신의 집단에 과도하게 몰입하여 자아를 잃고 집단에만 자신의 정체성을 두게 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탈개인화는 그 자체로 악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그것은 집단에 의존해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은 개인으로서 자신이 속한 집단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나치에 저항했던 독일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요. 그들은 분명 자신이 속한 독일이라는 집단이 옳지 않은 길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탈개인화는 분명히 긍정적인 영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공동체에 들어가 자신의 본래 행동양식 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행동양식을 지니게 된다던지, 집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다가 학교만 가면 공부를 한다던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 또한 탈개인화의 사례이기에 우리는 단지 우리의 집단은 어디를 향하며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항상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은 정말 정의로운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