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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믕딤 May 09. 2024

안경에게 쓰는 편지

안녕. 사람은 눈이 8할이라던데, 그 8할의 보조역할을 맡고 있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널 사러 안경점에 가면 나만의 철학이 있었어. 안경알은 제일 좋은 거로, 테는 제일 싼 걸로. 겉보기에 구려도 기능에 충실하자 주의였지. 근데 네가 나의 철학을 깨뜨렸잖아. 나는 너의 네모난 금속테에 빠져버렸단다. 나 세상 꼴통인데 널 쓰고 나면  똑똑해져보이는 효과가 있었어. 나는 샌님같은 내 모습 너무 좋아서 너로 결정을 했었지. 면접에서 그 덕을 많이 봤어.


가끔 널 깔고 앉고, 떨어뜨리고, 이리저리 보호함 없이 들고다지. 내가 사물에게 자비가 없는 편이라, 안경테들 쉽게 아작나 바람에 한 때는 안경 콧대를 테이프로 칭칭 감고 쓰고다녔잖아. 기억나? 나의 사회적 체면과 너의 사회적 체면 모두 구기는 짓이었지. 싸구려 안경테의 비극 것일까나? 사실 그때마다 안경점에 가서 고치면 될 걸 굳이 계속 그러고 다니는 나도 싸구려, 퍽 하면 부러지고 변형되는 너도 싸구려. 렇지만 우리는 함께했기 때문에 싸구려임에도 자신만만했지.


시력 안 좋은 내 두 눈, 두꺼운 안경알을 받치고 있느라 안경테 정말 고생했어. 네 번을 압축당하느라 온몸이 납작해진 렌즈도 고생하고. 루라이트 필름까지 깔아지느라 또 수고했고.


한창 멋 부리고 다닐 시절에는 렌즈 아니면 밖에 안 나갔을 때도 있었지. 그렇지만 눈이 다 아작나고 나서야 눈 건강에는 안경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어. 네가 없었다면 내 세상은 정말 어두컴컴했을 거야. 옇고 흐렸을 거야.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나 오늘 퇴근하면서 집에 오는데 햇살이 정말 눈부시게 높은 나무에 내렸잖아. 그래서 도로바닥에 나뭇잎 그림자가 노랗게 빛나면서 흔들거리고 정말 너무 아름다웠어. 내가 그걸 목격할 수 있었던 건 다 네 덕인 것 같아. 네가 나한테 그 아름다움을 보여준 것 같아. 너는 내가 보지 못 할 것들을 보게 하고, 세상을 선명하게 해.


그게 얼마나 큰 도움인지 아마 너는 잘 모를 거야. 안경아.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시선 속에 네가 함께 하고 있음에 감사해. 내가 조금 이따 널 또 쓸 것 같은데, 귀찮겠지만 내 눈앞에  나타나줘. 나 지금 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 화장실이었나, 아무튼 데리러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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