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앱을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갑자기 사람이 징그러울만큼 혐오감이 들어서, 그 기분을 누구한테라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끔씩 차오르는 혐오 뿐인 불만과 감정쓰레기는 비용을 지불하고 심리상담을 하며 털어놓는 게 합리적이고 속이 편하다. 사람들 하나하나가 징그럽다는 말을 친구나 가족에게 했다가는 괜한 오해와 걱정만 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앱에서 바로 상담 가능한 심리상담사가 없었다. 순간 또 짜증이 솟구쳤다. 이 기분을 내일까지 버티고 싶지 않았다. 내일이 되면 진정은 되겠지만, 나는 지금 멱살을 잡고 싶었다. 가장 아프게 때려서 K.O시키고 싶었다. 안 그러면 이 밤이 정말 길 것 같았다. 주변에 모기가 왱왱 거리는데 그걸 안 잡고 어떻게 잠에 들 수가 있나. 나는 계속 견딜 수 없는 혐오감이 들었고, 그런 혐오감이 드는 나도 혐오스러웠다. 엿 같아서 인터넷 검색창에 인간이 얼마나 징그러운지에 대해 검색했다. 그와중에 브런치 글이 상단에 뜨는 것을 보고.
아, 또 브런치야.
하고 짜증이 났다. 오늘밤의 나는 브런치도 짜증나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좀 익숙해졌다고, 브런치도 싫었다. 여기 써지는 글들도 싫어. 브런치 특유의 절절한 감성글들도 싫고, 본인의 삶과 본인의 볼행에 한껏 취한 것 같은 사람들도 싫고, 맞다. 대표적인 게 나다. 그래서 내 글도 싫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 글을 클릭해서 브런치에 들어왔다. 글을 쓰는 사람이 징그럽다는 글이었다. 과격한 표현이지만 무슨 마음인지 이해가 갔다. 나도 계속 열심히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과 만족스러움은 덤. 나는 내 안의 혐오감을 견디지 못하는 나를 한 대 때려줄 문장이 필요했나보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치. 글은 정말 징그러워. 글 쓰는 사람도 징그럽고. 글 쓰는 사람들 특유의 지적 허영,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어떤 관심을 받기 위해 한껏 치장한 단어와 문장 그 모든 것들이 싫다. 그래, 어쩌면 나는 나에게서 이런 부분들이 계속 짜증났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글 안에서만큼은 솔직하고 싶은데, 글에서조차 솔직해지는 게 또 눈치가 보였다. 이것도 내 유구한 사회부적응의 한 형태겠지. 그래서 글도 이런 글을 쓰는 거겠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는 모든 것들이 가끔은 미친듯이 지겹고 힘들게 느껴지니까 말이다.
나는 내 개인 메모장에다가 계속 혐오라는 말로 빙자한 쓰레기들을 계속해서 토해내고 있었다. 진짜 한심하고 징그럽게 느껴질 정도야. 하면서 허공에 삿대질을 했다. 네 스스로 결핍을 인지했으면,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걸 채우려는 노력이나 할 것이지. 언제까지 도망치면서 모든 상황을 낙관적으로 해석할건데?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모를 말들, 어쩌면 내일이면 지우게 될 쓰레기들이었다.
사실 그 욕에 대한 대상은 있었다. 최근 인연이 끝났던, 그에게 하는 욕이었다. 확실했다. 그런데 왜 누구한테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냐면, 내 욕은 다 나에게 치명타인 것들로만 엄선한 내 자기혐오 컬렉션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모든 욕들은, 만족스럽지 않은 나를 투영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하는 욕지거리는 모두 FROM ME, TO ME 라는 걸 나는 너무 알아. 그런데 나만 탓하기에는 너무 벅차.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몇몇 대상에게 뒤집어씌우고 신나게 패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어져버리니, 내가 느끼는 나에 대한 이 분노가 정말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도 싸늘해져서 더 미치겠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내 감정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받아줘야 할지 모르겠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집은 또 다시 엉망이다. 기분은 축축하고, 낮에 잠을 이미 잘 수 있을때까지 자버렸다. 꿈으로 도망도 못친다.
불길처럼 쓰던 타이핑도 멈추고 빗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비가 오면, 그동안 내가 걸어왔던 나의 흔적들을 비가 다 씻겨내려준다는 말이 떠오른다.
밤이 되면, 가난한 마음이 어둠속에 잠자코 있다가 아침이 되면 빛으로 태어난다는 말이 떠오른다.
울컥울컥 넘어오는 것들을 꾹꾹 삼킨다. 그래, 난 마음껏 슬퍼할 수 있다. 적어도 내 집엔 나 밖에 없으니. 되는대로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음을 누리자. 마법같지는 않아도 이내 곧 결론을 찾는다. 아니, 결론은 아니지. 아마 결론이 나려면 기나긴 오늘 밤이 다 지나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