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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믕딤 May 28. 2024

잘하는 것만 하면 못하게 돼

기숙사에서 살 때, 책상 한가운데에 붙여놓던 문구가 있다.


잘하는 것만 하면 못하게 돼


유명웹툰작가가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한 말. 특별하지 않게,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 말이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영원히 각인되어 버린 말. 뭐가 그렇게 와닿았는지 A4크기의 노트 한 장을 주욱 찢어, 큼지막한 글씨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았던 말.




이 말을 이해하려면, 일단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에 대한 구분부터 필요하다. 내가  하는 게 뭐고, 못하는 건 또 뭘까.


겨우 머릿속을 뒤져 대답한다.


남들보다 좀 일찍 일어나는 것 같아.

남들보다 감기에 덜 걸리는 것 같아...


사실 정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뭔가를 잘하고 못한다는 것은 명확한 교 대상이 있어야 한다 건  수 있다. 그 표현 앞에는 언제나 '남들보다'라는 전제가 붙. 또, '남들보다'의 '남들'이 누구냐에 따라 해석은 완전히 달라진다. 비교대상을 누구로 두느냐에 따라 잘함과 못함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노래를 부르면 옆집 친구보다 잘 부를 순 있어도, 비욘세보다 잘 부르진 못한다. 애초에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 자체가 참 상대적이고 애매하기 때문에. 누구보다는 조금 잘하는데, 누구보다는 많이 못한다. 재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재능이 그렇다고 타고난 것도 아니다. 나는 두 다리로 겨우 기어서 올라가는데, 누군가는 날개를 달고 슝 날아가니까.


그래서 잘한다는 말이 결국 의미가 있나 싶다. 잘한다는 착각만 있는 것 같다. 뭔가의 우위에 있는 상태를 즐기는 거지. 비교군은 비욘세가 아니라 옆집 철수인데 말이다. 누구보다 잘한다는 우위를 자꾸 인식하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 취하게 된다.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와 비교해서 얻는 알량한 자존감. 거기에 중독되면 답도 없다. 아무리 잘한다고 옆에서 부추겼다고, 본인 스스로 진짜 잘한다고 믿어버리면 엄청난 착각의 늪에 빠질 수 있는 거다.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나보다 잘난 사람들은 수두룩 빽빽인데 말이다.


'잘하는 것만 하면 못 하게 돼'라는 말이 난 그 부분을 꼬집는다고 생각했다. 잘한다는 착각에 빠져서, 잘하는 것만 계속하다 보면 결국 그 착각을 눈치채게 된다고. 아, 나 잘하는 게 아니구나. 하고 말이다. 나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고 '잘하는 것'이 아닌 '못하는 것'이었다는 현실을 아주 혹독한 방식으로 깨닫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경계를 두지 않아야 한다.  잘한다고 우쭐대지 말고, 못한다고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잘한다는 착각을 건강한 방식으로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워밍업으로 얀테의 법칙 복명복창하기.


1.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2. 당신이 남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3.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4. 당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5. 당신이 남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6. 당신이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7. 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8. 남들을 비웃지 마라.

9. 누군가 당신을 걱정하리라 생각하지 마라.

10. 남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뭔가를 남들보다 잘한다는 우월감을 버리려면,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착각을 버리려면 스스로의 위치를 바르게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은 남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잘하는 것도 없고, 못 하는 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냥 무엇이든 하십시오. 아무거나 하십시오. 그저 자유로워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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