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믕딤 Jul 05. 2024

나같은 바보도 좀 같이 살자


휴가였다.


새벽부터 소나기가 내렸다. 소나기 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깼다. 새벽 다섯시. 빗소리를 듣자마자 자동차 창문을 안 닫고 온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말벌 찾는 말벌아저씨처럼 잠에서 깬지 10초도 안 돼서 옷을 대충 걸치고 집을 뛰쳐나갔다. 복도에서부터 시원하게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무서울 정도였다. 다행히도 창문은 닫혀있었다. 내가 요즘 가장 불안해하는 요소다. 비오는 날, 집이든 차든 창문이 안 닫혀있는 것. 불안의 원인은, 사실 별 거 없다. 최근에 장마가 시작돼서 비가 자주 왔는데, 어느날 집주인에게 문자가 왔더랬다.


지금 비오기 시작하는데 차 창문 열려있는 것 같아요. 닫아야 할 것 같아서 문자드려요.


문자를 보자마자 튀어나가서 차 상태를 확인하니 뒷자석 창문이 활짝 내려가 있었다. 다행히 막 오기 시작할 때라서 차 안이 그렇게 젖어있지는 않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그때부터였나. 비 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내가 열어놓았을지도 모르는 창문들에 대해 걱정을 한다. 나는 창문을 자주 열어놓는다. 아침이면 새소리를 듣기 위해, 집안 환기를 시키기 위해 등등의 이유로 창문을 열어놓고 잔 적도 있다. 자동차 창문도 마찬가지다. 요즘 너무 더워서 차에 들어가면 차가 찜통이다. 오늘도 차안 온도가 44도였다. 창문을 열어놔야 생존할 수 있다. 여러 이유로 창문을 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여러 이유 비도 계속 올 수 밖에 없다. 당연히 7월이니까 비가오겠지. 그러니까 이건 어쩔 수 없이 자연발생하는 문제인 것이다. '창문을 열어놓는 나' 와 '쏟아지는 비' 간의 싸움. 비가 들이치는 게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가끔 집 창문을 열어놓고 온 것 같은 날이면 구글 검색에 '창문 열어놓고 온 것 같은데' 같은 글을 검색한다. 물바다가 돼서 마룻바닥이 들뜨고, 차가 침수급으로 젖어 작동이 고장나고 등등. 비가 들이치면 얼마나 나쁜 결과가 발생하는지 구경하며 불안에 불안에 불안을 더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불안을 못 이겨 집에 들러 창문이 열려있는지 닫혀있는지 기어코 확인하고 만다. 지금까지 창문이 닫혀있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소나기가 한바탕 내리자 온 세상이 맑아졌다. 파 하늘에 구름이 뽀용뽀용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뽀실하고 빵빵한 구름을 뽀용구름이라고 부른다. 내가 그 구름을 뽀용구름이라고 부르는 건 아무도 모른다. 근데 요즘 그 뽀용구름이 자주 나타나고, 보일 때마다 너무 신나고 좋아서 곧 주변에 말할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뽀용구름을 보자마자 오늘 휴가를 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를 낸 내 자신이 사랑스러울 정도였다. 시계를 보니 시간도 6시였다. 완벽한 휴가의 아침이 아닐 수 없었다.


장을 보고 와서 아침을 먹고, 두 시간만에 쓴 이력서를 제출하고(이게 화근이었다.), 낮잠도 한 숨 잤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1시 정도 되었길래 여유를 부리며 놀다가 창문 너머로 뽀용구름이 역시나 고개를 내밀고 있길래 못참고 나가서 드라이브를 했다. 요즘 제일 좋아하는 노래. 그냥 크게 틀어놓고 다니면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 빅나티의 밴쿠버2를 들으며, 뽀용구름 쪽으로 그냥 무작정 달렸다. 뽀용구름은 시시각각 모양이 변하며 어디론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어딘가를 따라갔고. 점점 구름이 가까워지는 걸 느낄 때마다 행복했다. 이게 인생인가 싶었다. 나는 가끔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내가 경조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정도로 기분이 매우 고조되고 신이나고 온몸을 들썩거리고 싶을 정도로 즐거워진다. 그 과한 즐거움을 느끼며 구름을 따라갔을 때는, 정말 너무 아름다운 하늘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산간지역에 사는 나, 정말 나이스한 선택이었다.


집에 돌아와 유튜브 같은 걸 보면서 놀다가, 문득 쓸데 없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력서 지원한 곳에 만약 합격하면 어떡하지? 같은 바보같은 걱정이었다. 오히려 안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불합격하면 그냥 마음 편하게 현재 회사생활하다가, 내년에 좀 쉬면서 공부하다가 등등 이미 생각해놓았던 미래 계획 플랜대로 하면 될텐데. 그곳에 합격하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지역과 이 집과 이 직장을 이번 달 안에 떠나야 했다. 그건 말도 안 되지. 불행해지는 지름길이지. 그리고 어차피 업무도 만족하지 못할거고, 워라밸 등 지금 회사가 너무 좋아서 만족하지 못 할 게 뻔했다. 우울해지기만 하겠지. 말도 안 되는 김칫국을 백통을 드링킹하다가 갑자기 정말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나는 지금처럼 안정되어있던 적이 없지만, 사실 남들이 보기엔 충분히 불안정해보일 수 있는 조건들이 많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직장, 점점 차오르는 나이 등등. 부모님의 걱정도 충분히 들어왔고, 주변에서도 이제 한국사회에서 정해져있는 루트, 취업 결혼 육아 등의 주제로 나에게 무언가를 들이밀기도 했다. 전혀 관심도 없고, 들을 때마다 불쾌해지는데 내가 원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이렇게 살아야 해.' 하고 말하는 그 말들과 시선들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 난 지금 잘 못 살고 있는 건가 싶어서. 나는 이렇게 부족하게 살아도 괜찮은데, 다들 나보고 조금만 지나면 결국엔 손도 못 쓸 정도로 불행해질 걸? 이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나만 뭘 모르는 건가. 나만 바보인 건가.


분명 휴가인데, 아까는 너무 너무 좋고 행복해서 당장 죽어도 상관없을만큼 행복했는데, 별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온갖 상상을 다하고 나니 울고싶을 정도로 울적했다. 아, 꼭 인생을 그렇게 필사적으로 제대로 살아야 돼? 그냥 뭐가 되겠다는 야망같은 거 없이 대충 흘러가듯이 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오늘처럼 행복하게 쉬다가 일하고 쉬다가 일하고 그냥 내 입에 풀칠 할 정도로만, 그냥 내 밥벌이 하면서 속 편하게 살고 싶어. 그러고 살려고 나도 노력하고 있는데, 세상이 자꾸 나를 불안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불안도 있어야 맞는 거겠지. 정당한 불안이고, 정당한 분노겠지. 다만 남들이 조장하는 불안에 휩쓸리지 않기로 스스로 마음 먹는다. 적어도 내 삶은 내가 느끼는 행복의 가치에 맞게, 내 삶에 맞게 계획하겠다. 남들 보기 좋으라고 원하지 않는 걸 애써 선택하진 않을 것이다. 세상아. 나같이 뭣모르는 바보도 행복할 수 있게 해줘라. 그냥 좀 같이 살자. 나 같이 사는 사람도, 그냥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나보다 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여주라.


 

매거진의 이전글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면서 살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