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교양 수업 중에 교수님이 아름다움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주셨다. 바다를 사랑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덧붙이는 말에 한 인용문이 언급됐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인용문을 잊을 수 없다.
"아름다움을 목격한 자, 그 아름다움을 보기 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다에서 아름다움을 봤고, 그 아름다움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바다로 되돌아갔다고 했다. 어떠한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목격한 순간 우리는 그것을 깊이 사랑하게 되고,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그 대상이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나는 그 문장이 뭉클할 정도로 좋았다. 만약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면, 나는 이 문장을 떠올릴 것이다. 바다를 떠올릴 것이다.
사실 난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꿈이 있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해일에 죽는 꿈이었다. 언젠가 어쩔 수 없이 죽게 될 텐데, 어차피 죽을 거라면 바다가 빌딩처럼 수직으로 서서 밀려오는 걸 한 번 보고 죽고 싶어. 그러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이 생각에 몰두한 나머지 내 꿈을 소개하듯이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 말이 왠지 나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에도 집채만 한 파도가 넘실대는 영상, 태풍 때 비바람이 몰아치는 영상을 취미처럼 보았다. 끝도 없는 해수면이 펼쳐져있고, 바닷물이 춤을 추듯이 출렁출렁 거리며 만들어내는 그 역동성과 변동성을 작품 보듯 했다.
훌쩍 커버린 나는 지금 바다 근처에 살고 있다. 10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면 해변이 나오고, 해안도로를 달릴 수도 있다. 눈을 떠서 커튼을 치면 바다가 보였고, 사시사철 강한 해풍이 불어 창문이 덜컹거렸다. 가끔 날이 좋으면 먼바다가 에메랄드빛으로 빛났다. 날이 궂으면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를 구경하곤 했다. 가끔 일을 하다가 속이 답답한 날이면, 점심시간에 해안도로를 달렸다.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고, 고작 점심시간에 몇십 분 바다를 눈으로 보았을 뿐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괜찮아졌다. 정말 이상했다. 바다는 내게 그런 곳이다. 힘든 마음을 두고 오는 곳. 흘려보내는 곳.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를 움직이는 곳. 내 마음, 나의 어떤 것도 내가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알게 해주는 곳. 그저 밀려오면 밀려오고, 달아나면 달아나는. 그 변화무쌍한 변덕으로 내가 놓지 못하는 걱정과 불안도 마음대로 가져가버린다. 불행을 손에 쥐고 있고 싶어도, 넘실대며 쓸어가 버린다.
바다에는 힘이 있다. 변화하는 힘. 예측할 수 없는 힘. 저항한다고 멈춰지지 않고, 거부한다고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매섭고 강하게 아름답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잔잔하다가도 한순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다. 한 순간에 발 닿지 않는 깊고 넓은 그곳으로 이끈다. 그게 고통이든, 삶이든.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당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