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동안 어두컴컴한 숲을 걷는 코스였는데, 숲 곳곳에 하얀 알전구처럼 콕콕 박힌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가 빛을 내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일러스트와 보정된 사진 속에서 표현되던 그런 동화적인(팅커벨 같은) 불빛은 아니었지만, 몸에서 빛을 뿜는 생물이 지구에 있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 같았다. 일정한 간격으로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가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처럼 번쩍거렸다. 빛공해가 전혀 없는 숲 속이라 눈앞이 아무것도 안 보일 때가 많았지만, 반딧불이 무리의 빛이 번쩍거릴 때마다 숲 속 나무줄기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반딧불이들은 대체로 숲동굴 속에 모여있는 듯했는데, 가끔가다 한 두 마리가 강한 빛을 뿜으며 독고다이로 혼자 다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함께 숲 속을 걷고 있던 친구에게 말했다.
"어느 무리에서나 5에서 10프로는 외톨이래요."
친구는 대답했다.
"꼭 번식만을 위해 빛을 내는 걸까요? 그냥 빛을 내고 싶어서 빛을 낼 수도 있잖아요."
맞아요. 어딜 가나 별종들이 있잖아요.
그 말을 하면서 이상하게 조금 위로가 되었다.
숲 해설사님께서 설명해 주시기를, 반딧불이들이 빛을 내는 이유는 번식을 목적으로 둔다고 했다. 수컷 반딧불이가 빛을 번쩍거리며 돌아다니며 매력을 발산하고, 암컷 반딧불이는 빛을 내며 나무 같은데 붙어있다가 맘에 안 드는 수컷 반딧불이가 다가오면 빛을 탁 꺼버린다고 한다.
뭐야. 너무해. 친구와 나는 킬킬거리며 해설사님이 덧붙여주시는 반딧불이에 대한 정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반딧불이는 사람의 체온이 스치기만 해도 화상을 입어 죽는다는데 너무 연약한 존재인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보니 반딧불이랑 모기랑 공생이 안 된다던데 그래서 이 숲에 모기가 없는 것 같아요, 바퀴벌레랑 개미 사이 같은 걸까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숲길을 거닐었다. 그러다 숲 속에 반딧불이 말고 빛을 하나 더 발견했다.
달빛.
달빛이 너무도 밝았다. 반달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름달처럼 꽉 찬 빛을 품고 있었다. 어찌나 밝은지 달 주위로 달무리가 형성되어 달이 꼭 하얀 구름에 두둥실 실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숲 길을 걸으면서 반딧불이도 반딧불이지만 달빛이 너무 밝고 예뻐서 우리는 계속 와. 달빛이.. 하며 그 아름다움을 언급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던 게 우리 앞뒤로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꼬마들과 부모님 일행들이 있었는데, 한 꼬마가 그런 말을 했다.
"옆을 보나, 위를 보나 빛이 너무 밝고 예쁘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 말을 내뱉는 앳된 목소리와 감성이 너무 예뻐서 살짝 뭉클할 뻔도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아이들에게 이 감상들이 얼마나 큰 추억이 될까? 나도 어렸을 때 부모님과 손을 잡고 반딧불이를 보러 올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자연스럽게 또,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달빛과 반딧불이빛에 의존하며 깜깜한 숲길을 한참 걸었더니, 저 멀리 정말 강렬한 빛 하나 온 거리를 비추고 있는 게 보였다. 반딧불이 축제를 관할하는 건물의 빛이었다. 한 시간 동안의 숲 트레킹 코스가 다 끝나가고 있었다.
저 건물을 보니까 이승에 도착한 것 같아요.지금까지 저승에 갔다 온 기분이에요.
친구는 그 말을 듣더니 정말 딱 맞는 표현이라고 웃었다.
자연에서 본 빛은 너무도 희미하고 연약해서, 어둠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영혼 같았는데 그래서 계속 꿈속에서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인간이 만든 건물이 뿜는 강렬한 빛을 보니 마치 기나긴 여름밤 꿈속에서 깨어난 것만 같았다.